소설이 묘사하듯 마산은 주민들한테 살가웠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렇듯 잘해 준 거 하나 없는 도시에 사람들은 왜 자부심을 느낄까.
-천현우(『쇳밥일지』 저자)
● 마산으로, 마산으로
마산은 대한민국이 정치적, 산업적으로 큰 분기점을 맞을 때마다 파도를 온몸으로 맞이하고는 그 상흔을 곳곳에 품게 된 도시다. 먼저 1970년대, 섬유 산업의 흥성으로 도시도 함께 부흥하였으나 그 이면에는 억압적인 노동 환경을 견뎌 내야 했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다음으로 1990년대, 섬유 산업의 쇠퇴는 물론 IMF 외환 위기 이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삶의 무게와 외로움을 각자 짊어져야만 했던 청춘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2020년대, 관광 산업으로 다시금 도약을 도모해 보던 도시가 팬데믹의 여파로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며 함께 막막한 미래를 감당해야 했던 청년들이 있었다. 소설가 김기창의 장편소설 『마산』은 50년이라는 긴 세월을 가로지르며 쓸쓸하고 스산한 도시를 거니는 세 세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 냈다. 1974년의 동미, 1999년의 준구, 2021년의 은재와 태웅. 세대는 다르지만 이들이 느끼는 절망과 고독은 슬플 만큼 닮아 있다. 『마산』은 묻는다. 이토록 척박한 각자도생의 삶에 과연 탈출구가 있을지. 이곳 마산에서 각자의 희망을 다시 피워 낼 수 있을 것인지.
▶ 1974년의 동미, “공장은 밤이 낮처럼 환한 세계였다.”
‘마산으로, 마산으로’라는 말이 나돌던 시절, 취업을 위해 마산에 온 동미는 마산에 설립된, 일본 회사의 한국 지사에 다니며 일본행을 꿈꾸었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발급받아 밤낮없는 노동을 강요받는다. 일본행만을 위해 현실을 버텨 오던 동미는 경리과장에게 속아, 일본인 지사장 겐지와의 주말 등산에 동행한 일이 공장 내 스캔들로 번지며 일본행마저 좌절되고 만다. 동미는 결국 밤이 낮처럼 환한 공장을 뛰쳐나오며,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어둠 속으로 달려 들어간다.
▶ 1999년의 준구, “사라진 부모님을 그게 대신할 수 있다고? 대마초가?”
준구의 부모는 IMF의 여파로 중국으로, 브라질로, 거듭되는 좌절에 뒤쫓기며 새로운 삶을 향해 도피 중이다. 마산에 홀로 남은 준구는 당장 내일의 생계마저 불투명한 상태다. 준구는 이제는 폐허가 된 부모님의 상점 ‘광남유니폼사’에 목돈을 숨겨 두었다는 아버지의 전언에 따라 빚쟁이들의 시선을 주의하며 몰래 어둑한 가게 안으로 잠입한다. 그러나 가게 안에는 뜻밖의 손님이 먼저 와 있었다. 광남유니폼사 직원이었던 명길이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절망을 전하며 명길과 준구는 먼지가 뒹구는 불 꺼진 상점 안에서 한동안 대치한다. 앞으로 더 짙은 어둠이 자신들에게 덮쳐 올 것을 예감하면서.
▶ 2021년의 은재와 태웅, “적어도 서울은 그럴 기회가 적당히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마산은 아니었다.”
플라스틱 제조 업체에서 일하던 태웅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마산에서라면 대마초 장사가 잘되리라는 것. 마침 태웅의 대학 동창 은재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허름한 호텔방 한켠에서 꽃씨처럼 보이는 뭉치를 발견하고, 그것이 대마초 씨앗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린다. 선을 넘지 않고서는 지리멸렬한 인생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한 둘은 위험한 길로 들어서기로, 선을 넘어 버리기로 결심한다. 넘어야 할 선은 자꾸만 뒤로 물러나며 둘에게 더 큰 위험을 감수하기를 강요하지만 은재와 태웅은 물러서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