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랑 같이 살지 않을래?”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시작된 네 자매의 인연
작가 요시다 아키미는 『바닷마을 diary』의 완결을 기념하여 역대 편집자들과 가진 좌담 인터뷰에서 “연재 초반에는 담담한 일상 이야기는 그릴 자신이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실제로 작가의 대표작인 『BANANA FISH』는 신종 마약을 둘러싼 거대 마피아의 음모를 다룬 거칠고 강렬한 작품이다. 『BANANA FISH』와 비교할 때 『바닷마을 diary』는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평화롭고 소박한 일상물이지만,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작가의 속 깊고 단단한 시선과 원숙함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요시다 아키미에 따르면 『바닷마을 diary』의 집필 계기는 전작 『러버스 키스』의 주인공 토모아키로부터 시작되었다. 토모아키의 또다른 이야기를 구상하던 중 그의 여자친구 중 하나인 ‘요시노’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거기서부터 『바닷마을 diary』의 네 자매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닷마을 diary』는 네 자매에 국한하지 않고 그들을 둘러싼 남녀노소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고르게 다룬다. 군중극이라 해도 좋을 만큼 소홀히 넘길 만한 인물이 없다. 작가의 시선은 인물들을 하나하나 세심히 짚으며 그들의 상처를 정성스레 어루만진다. 이렇듯 시선이 옆으로 확장되다보니 이야기 흐름에서『BANANA FISH』와 같은 강렬한 추진력은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와 나란히 서서 그의 눈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뭉클한 감동과 따뜻한 온기가 이 만화에는 존재한다.
실제로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람들의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볼 줄 아는 사려를 갖췄다. 그들은 소란이나 엄살을 떠는 법 없이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며 삶이 던지는 고난과 고통에 맞서나간다. 그렇게 무심한 듯 평온해 보이는 인물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에 다다르면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읽는 이의 마음에 조용하지만 깊은 파문을 일으킨다.
제2의 주인공, 바닷마을 ‘카마쿠라’
『바닷마을 diary』를 얘기하면서 작품의 무대인 ‘카마쿠라’를 빠뜨릴 수 없다. 해안에 위치한 소도시 카마쿠라는 작가 요시다 아키미가 ‘제2의 고향’이라 부를 정도로 애착을 보인 곳으로, 작가의 1995년작인 『러버스 키스』의 배경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토모아키를 비롯한 몇몇 인물들을 『바닷마을 diary』에 재등장시키는데, 두 작품 간 연결고리를 찾아보는 것 또한 묘미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카마쿠라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카마쿠라의 실제 명소들은 인물들의 심경이나 상황을 대변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요시다 아키미는 2013년 『바닷마을 diary』로 〈일본 만화대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카마쿠라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며 “앞으로도 카마쿠라를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볼 생각이다. 『러버스 키스』와 『바닷마을 diary』의 등장인물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며, 카마쿠라가 작품에 미친 영향력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계절은 변함없이 돌고 돌며
사람은 끝없이 만나고 헤어진다
『바닷마을 diary』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또다른 요소는 계절의 흐름이다. 이야기 전개에서 계절의 변화를 떼어놓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럽게 얽혀 있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처음 만난 이복언니들을 따라 카마쿠라에 온 중학교 1학년생 스즈는 이곳에서 세 번의 봄을 보낸다. 웃음과 울음을 모두 잃은 얼굴로 죽어가는 아빠의 침대를 지키던 아이는 언니들과 주변의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비로소 성장하여 새로운 곳으로 떠날 용기를 얻는다. 스즈에게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큰언니 사치 또한 스즈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씻어낸다. 흘러가듯 보이지만 결국 되돌아오는 계절처럼 『바닷마을 diary』의 사람들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내면은 깊고 단단해진다.
“행복이 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를 걱정하고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치고, 일하고 먹고 함께 웃는다.
그런 시간이 그저 소중하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9 - 다녀올게』 中
만화 속 독백처럼 행복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일상 그 속에 있음을, 이 만화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괜찮을 거야, 언제든 돌아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