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의 박찬욱,《타짜》의 최동훈,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황홀한 영화적 시간을 선사한 감독들과의 깊고 내밀한 인터뷰 《올드보이》의 박찬욱,《타짜》의 최동훈,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황홀한 영화적 시간을 선사하는 사람들과의 깊고 내밀한 인터뷰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확고한 자신의 색깔을 지니고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한국 대표 영화감독 박찬욱, 최동훈, 이명세 감독과 나눈 특별한 인터뷰를 모은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그 영화의 시간》이 출간되었다. 영화 속 대사들에서 끌어낸 질문을 통해 감독들의 삶과 작품세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보는 독특한 형식을 갖고 있는 이 책은 한 감독당 대여섯 번씩, 길게는 한 번에 열 시간씩 인터뷰한 결과, 원고지 약 3,000여 매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통해 어느 곳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깊고 내밀한 내용을 선보인다.
이 책은 지난 2009년 출간한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그 영화의 비밀》(홍상수, 봉준호, 류승완, 유하, 임순례, 김태용 감독 인터뷰 수록)에 이어지는 ‘부메랑 인터뷰’ 시리즈 두 번째 권으로, 다루는 감독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대신 각 감독당 인터뷰는 700여 매에서 1,000매까지 더욱 길어지고 깊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첫 할리우드 연출작 《스토커》나 1,300만 관객의 흥행 기록을 세운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같은 신작뿐만 아니라 이명세 감독의 《M》이나 《형사》 등 대표작과 데뷔작까지 국내외 영화계의 관심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세 감독의 모든 작품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그 영화의 시간》은, 단순한 질문과 답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열광적인 반응을 모았던 이 작품들이 만들어진 과정과 감독으로서의 연출 의도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동시에 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감독론’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예술가이자 성실한 직업인 박찬욱 이야기에 대한 욕망과 재능을 갖춘 최동훈 단 하나의 영화 문장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명세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그 영화의 시간》에서 만나게 되는 박찬욱, 최동훈, 이명세 감독은 그 이름만으로도 영화팬들의 기대를 높일 만하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올드보이》 이후 한국의 어느 연출가보다 강력한 예술적 파워를 갖게 된 박찬욱 감독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는 “한국의 대중영화 전반에 전혀 다른 감각과 화법으로 거대한 충격파를 던졌”으며 “그의 필모그래피는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로 설득해가며 대중을 견인해가는 방식으로 이어졌다”라고 평한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스토커》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박찬욱 감독의 장편영화 아홉 편에 대해서 연출 방식과 의도를 꼼꼼히 살피는 동시에 작품들에 녹아 흐르는 감독 특유의 주제의식을 치밀하게 되묻고 확인한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부터 장르영화 연출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이래 최근작 《도둑들》로 명실상부한 흥행 파워까지 갖게 된 최동훈 감독. “역동적인 스타일”과 더불어 생생한 캐릭터를 창조해온 최동훈 감독을 인터뷰하는 이동진 평론가는 특히 그가 가진 ‘이야기에 대한 욕망과 재능’에 주목한다. 최동훈 감독의 재치 있고 개성 넘치는 대사, 스피디하면서 감각적인 편집과 구성, 캐스팅의 비밀 등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그의 영화처럼 시종일관 흥미롭게 펼쳐진다.
자타가 공인하는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과의 인터뷰는 “이명세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의 모든 작품을 보고 또 보았지만, 나는 그의 다음 영화가 어떤 모습일지 여전히 상상하지 못한다”고 고백한 이동진 평론가와 이명세 감독과의 대화는 《개그맨》부터 《M》까지 감독의 전작을 자세하게 복기하고 되살리는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영화 언어를 찾아서 오랜 세월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길 위에 있”는 ‘영화주의자’의 예술관과 인생관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부메랑 인터뷰’를 처음 기획할 때 능력에 비해 내 야심은 턱없이 컸다. 한 편의 영화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를 미시적으로 구석구석 파고들어가면서도, 다 읽고 나면 물러서서 벽화를 바라보듯 한 감독의 세계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기를 바랐다. 변죽만 울리고 말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양적으로도 방대한 작업이 되길 원했고(말하자면 나는 시간의 질보다 양을 더 믿는 사람이다), 문답 형식이 반복되는 지루함을 피하고자 그 감독의 영화들 속에 등장하는 대사들이 고스란히 질문이 되면서 흥미를 자아내도록 의도했다(그러니까 나는 본질적으로 형식주의자다). 영화를 더 깊게 읽어내고 싶어 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발판을 제공해주는, 영화평론가로서 내게 그건 일종의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 같은 작업일 수도 있다는 과대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세상에 없었던 인터뷰 책을 쓰고 싶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 책속으로 이어서 -
이동진_ 대중영화에서는 최적의 배우를 캐스팅하면 이미 절반가량은 끝난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감독님은 배우에 대한 감이 유달리 뛰어나신 것 같은데 어떻게 캐스팅하십니까.
최동훈_ 캐스팅이 정말 영화의 절반일 거예요. 감독이 원한다고 해서 캐스팅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마음에 두었던 배우들과 함께하게 되면 정말 운이 좋은 거죠. 저는 캐스팅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배우에 대한 판타지를 속으로 키워갑니다. 그 사람이 제가 쓴 대사를 말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김혜수 씨의 경우, 캐스팅하기 전에 어떤 식당의 옆 자리에서 말하는 걸 계속 듣게 됐어요. 그때 속으로 그런 상상을 했죠. 저는 제 상상력을 자극하는 배우가 좋습니다.
(《이야기에 대한 욕망과 재능 : 최동훈》 중 본문 418쪽)
- 우리가 찍을 영화 첫 장면 말이야, 주인공이 가스 자살을 하려고 하려다가 의자에 넘어져서 실패하는 그 장면 말이야. 그게 바로 인생이야. 우리 인생은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를 맞이하게 되는 거야. 아마 그 장면 보던 관객들은 복도에서 아주 데굴데굴 구르면서 난리를 칠 거야. 모르긴 몰라도 그 장면 때문에 백만 명은 더 올걸?
《개그맨》에서 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안성기가 함께 강도짓을 하게 된 황신혜에게 말을 건 네면서
이동진_ 감독님 영화의 바탕에는 페이소스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희극적인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바탕에는 슬픔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라고 할까요.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카피를 썼던 《남자는 괴로워》와 남을 웃기는 게 직업인 남자의 못다 이룬 꿈과 슬픔을 다룬 《개그맨》이 대표적이겠지만, 여타 작품들에서도 비슷한 정조가 지속적으로 발견됩니다.
이명세_ 그건 내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겠지. 나는 가장 중요한 예술가의 자세가 연민이라고 생각해. 그건 예술가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일 거야. 그런데 영화적으로 연민을 드러내는 방법론은 늘 엉켜 있어요. 찰리 채플린도 말했지만, 사실 희극은 롱쇼트(멀리 찍기)에서 비롯해. 반면에 비극은 클로즈업에 담겨 있는 거지.
(《단 하나의 영화 문장을 향하여 : 이명세》 중 본문 540~541쪽)
이동진_ 감독님 영화 속의 어떤 장면들을 볼 때면 최대한 대사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연출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대사에 의지하지 않고서 시각적인 언어로만 표현하는 걸 즐기신다고 할까요.
이명세_ 그게 영화니까. 물론 대사에도 중요성이 있지만 배우의 몸을 통 해 같은 걸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거지. 내게는 무성영화 시절 의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대사 없이 영화를 찍고 싶은 욕망이 있어. 대사를 하나도 넣지 않고 찍고 싶다고. 음악과 사운드와 배우의 동작만 으로 충분한 영화를 만들어서 영화의 선배들과 승부를 벌이고 싶어.
(《단 하나의 영화 문장을 향하여 : 이명세》 중 본문 5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