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현대적 권력 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자 필독서인, 스티븐 룩스의 불멸의 고전인 ‘Power-A Radical View’(2021년에 출판된 제3개정판)의 완역이다.
저자는 기존의 (가시적이며 관찰가능한) 일차원적 권력,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의미하는) 이차원적인 권력과 대비하면서, (상대의 의식을 통제하여 직접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상대방의 순응을 확보하는 역량으로서의 권력”을 “삼차원적” 권력이라고 명명하고 종래의 권력론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을 가하고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자신의 권력론을 급진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저자는 자신보다 더 급진적인 푸코의 권력론을 “초 급진적” 권력론이라고 칭하고 있다).
본서의 초판은 현재로부터 대략 50년 전인 1974년에 발행되었으며, 그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정의하고 분석함에 있어서 ‘행사되고 관찰가능한’ 권력에만 주목하는 소위 ‘행태주의자 내지는 다원론자’들의 입장(일차원적 권력론)과, ‘행사되지 않더라도 (따라서 드러나지 않고 있더라도) 대상주체들의 자발적 순응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 (capacity)’으로서 권력에 주목하는 ‘근본주의적 입장’(삼차원적 권력론)을 견지하는 입장들 간에 발생한 소위 ‘권력논쟁’(power debate)을 촉발하였고, 정치나 사회적 현실을 이해함에 있어서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고전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난 50년 간 사회과학, 사회철학, 정치철학의 분야에 있어서 필독서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으며, 권력에 대한 거의 모든 현대적 논의에서 어김없이 인용되고 토론되는 중요한 저술이다. 즉, 권력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고전적인 막스 베버의 권력에 대한 논의와 함께 필히 거쳐야만하는 관문이자 동시에 입문서이다.
제 1판의 발행 이후, 저자는 단지 한 장(章)에 불과하던 아주 짧은 초판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제1판에서의 저자가 가진 생각들을 수정하는 의미로 두 장을 추가하여 2005년에 제2판을 발행한 바 있으며, 그 이후 그가 팔순을 넘긴 2021년에는 지배의 문제와 현실적 실천의 문제에 관한 두 장을 더 추가하여 총 5장으로 구성된 제3판을 출판하였다. 그 과정에서 참고문헌과 색인을 제외한 분량은 최초 1판에 비하여 약 4배 가량 증가하였다.
참고로 1974년 발행된 본서의 초판은 《삼차원적 권력론》이라는 제목으로 1992년 국내에서 번역 출판된 바 있다. 하지만, 2021년에 발행한 제3판은 자신이 초판에서 개진한 개념화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는 중요한 수정을 수록하고 있기에, 책의 내용 분량의 큰 차이 이외에도 초판과 이 제3개정판은 현저한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이 중요한 고전의 최신판을 번역하여 한국의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절실하였고, 이에 제 3판을 완역하여 출시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기존에 제 1판의 번역본을 접한 독자들도, 본 제3판에서 수정, 증보된 내용에 귀를 기울이실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이 제3판은 1974년 1판 출판 이후 촉발된 권력논쟁, 지배논쟁, 그리고 여타 지난 50년간의 현대적 논의를 집대성하였기에, 통상적으로 고전들의 한계인 ‘시대에 뒤떨어졌다’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고, 고전으로서는 드물게 바로 현재까지의 논의도 또한 저자 자신에 의하여 통합시킨, 가히 ‘현대판 고전’이자 ‘최신판 고전’이라고도 불릴 수 있으며, 권력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입문서의 역할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본서가 가진 고전적 성격으로 인하여 이 중요한 저서가 향후 최소한 100년 이상 동안은 계속 읽히고 토론되리라고 믿는다.
현재의 한국의 상황에서 볼 때, 본서의 한국어판 출판은 시의적절하다. 그 당연한 이유는 많은 국민들은 소위 무소불위의 권력의 압제하에 신음하고 있는데, 그러한 권력은 명백히 드러나는 권력 이외에도 각종 제도적 장치나 소위 ‘시장의 논리’를 통하거나 혹은 권력에 의한 언론 매체의 장악 등을 통한, 쉽게 드러나지 않는 형태의 간접적 형태의 권력, 즉 저자가 말하고 있는 삼차원적 권력의 행사를 통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행사되고 있고, 사실 국민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일반인에게는 명백하게 드러나는 권력 행사조차도 볼 수 없도록 이미 세뇌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반면, 권력의 지배를 체감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당면 권력에 의한 압제의 문제가 단순한 ‘감정적 느낌’을 넘어 ‘인식’의 차원으로 한 단계 승화될 필요가 있으며, 또한 그러한 논거와 증거에 기반한 확고한 인식을 바탕으로 각성된 자들이 현상태의 개선을 위하여 실천할 수 있는 출발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혼자만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또한 혼자만의 실천이라는 것도 없다. 앎은 나눔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심화되고 또한 실천될 수 있다. 스피노자의 인간의 본성에 관한, 그리고 권력과 지배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은 시인과 철학자의 영감을 자극할 수 있지만, 그것이 철학의 영역을 넘어서 실천적 지식이 되기 위하여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은폐된 권력과 지배를 ‘논리’와 ‘증거’로서 드러나게 하는 ‘인식’이라는 선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본서의 가장 중요한 공헌이 바로 이점에 있다.
즉, 유럽에서 먼저 개진된 권력과 지배의 문제에 기반하여 영미권의 분석적 시각과 ‘현실적 검증’이라는 측면을 가미하여 전자의 자칫 철학가 개인만의 사유에 그칠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서의 공헌이 있다. 본서는 스피노자, 마르크스, 니체, 막스 베버, 그람시, 부르디외, 푸코 등의, 권력 현상을 자신의 주요한 연구 주제로 삼고 심도 깊은 분석을 한 유럽 사상가들과, 존 스튜어트 밀, 아마르티아 센, 누스 바움 등의 영미(인도)권 사상가들의 이론들을 분석적 시각으로 결합한 바탕 위에 보다 다양한 실천적∙실증적 연구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본서는 도서출판 진인진이 이미 번역 출판한, 권력과 지배에 관한 두 권의 고전적 저서, 즉, 프리드리히 폰 비저의 《권력의 법칙》과 로르동의 《자본주의와 자발적 예속》을 크게 보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두 권의 저서는 독일-오스트리아, 프랑스 각기에 있어서 발전되어 온, 철학적 성찰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본서는 보다 ‘분석적’이며 ‘실증적’이고 또한 ‘실천적’이다. 또한 이미 국내에 번역 출판된 바 있는, 16세기에 출판된 고전인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 그리고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보여지는 권력에 대한 직관과 성찰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위대한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