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의 질주 -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지아니 메를로 지음
스물넷의 질주

저자 :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 지아니 메를로 번역 : 정미현

발행일 : 2012년 07월 27일 출간

분류 : 문학 > 나라별 에세이 > 기타국가에세이 KDC : 철학(190)

정가 : 13,000원

출판사
출판사연락처
출판사 주소
쪽수
260
ISBN
9788964231449
크기
148 * 210 * 20 mm / 456 g

도서분류

문학 > 나라별 에세이 > 기타국가에세이
문학 > 인물/자전적에세이 > 자전적에세이

도서소개

신은 내게서 두 다리를 앗아갔지만 나는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선천적 장애로 양쪽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세계 육상의 정상에 우뚝 선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의 감동적인 인생 도전기『스물넷의 질주』. 종아리뼈 없이 태어나 양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지만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과 특별한 교육으로 장애인 육상 선수가 아닌 평범한 한 명의 육상선수로서 국제무대에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며 많은 이들의 롤모델로 인정받는 저자의 삶을 그린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의 삶과 인생철학, 청년의 연애사, 가족의 든든한 지원 등의 개인적 면모와 함께 전도유망한 육상 선수가 들려주는 운동에 관한 이야기까지 들어볼 수 있다. 장애라는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 2012년 런던올림픽대회에 1600m 계주 남아공 국가대표선수로 참가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며 꿈꾸고 도전하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작게나마 힘이 되고 싶어 하는 저자의 희망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저자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198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11개월이 되었을 때 그가 최대한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해주기 위해 양쪽 다리를 절단하기로 결정한다.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과 특별한 교육으로 그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아니 오히려 모든 면에서 정상인들을 능가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나며 성장했다. 또한 그는 국제무대에서 육상선수로서 여러 차례에 걸쳐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장애인 운동선수뿐 아니라 정상인들에게도 훌륭한 롤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 ‘다리 없는 가장 빠른 사나이’로 알려진 피스토리우스는 양쪽 다리가 없는 육상 선수로서 패럴림픽 육상 100m, 200m, 400m 세계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치타 플렉스풋(치타 다리를 본떠 만든 탄소섬유 재질의 보철 다리)으로 달리는 스프린터이다. 2011년 8월 대구에서 개최되었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400m 준결승 진출, 1600m 계주 은메달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또한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대회에 1,600m 계주 남아공 국가대표선수로 참가하기로 확정되었는데, 절단 장애인이 올림픽에 출전해 정상인들과 겨루는 것은 1896년 제1회 그리스 아테네 대회 이후 116년의 올림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는 2012년 미국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바 있다. 저자 지아니 메를로 역자 정미현 역자 정미현은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한양대학교에서 연극영화학을 공부했고, 뉴질랜드 이든즈 칼리지(Edenz Colleges)에서 TESOL 과정을 마쳤다. 좋은 글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해주는 능력 있는 ‘중매쟁이’를 꿈꾸며, 현재 펍헙 번역그룹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일생에 한 번 내게 물어야 할 것들』『크로웰』『스팸 세상에서 나 지키기』『위로Solace』(출간 예정) 등이 있다.

목차

저자 서문_ 장애인 육상 선수가 아닌 평범한 한 명의 육상 선수 이야기 1장. 종아리뼈 없이 태어난 아이 2장. 웬만해선 피스토리우스를 막을 수 없다 3장. “너희 부모님도 돈 많이 벌면 나처럼 멋진 다리 살 수 있어!” 4장. 프리토리아 고등학교 기숙사 가짜 화재 사건 5장. 재혼 후 한 달 만에 돌아가신 어머니 6장. 처음, 달리다 7장. 잃어버린 다리를 돌려받고 싶으냐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8장. 테러리스트 용의자로 체포된 암스테르담 공항 사건 9장. 내 사랑 비키 10장. 보철 다리 착용에 관한 끝없는 논쟁 11장. 한 개의 세계 신기록과 세 개의 금메달 12장. 런던을 향해, 다시 달리다 형이 보낸 편지 아버지가 보낸 편지 역자 후기_ 건강하고 유쾌한 달음박질

서평

400m 경기 준결승 7위, 그러나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시청자를 감동시킨 대구세계육상경기대회의 진정한 영웅,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아직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2011년 9월 초의 어느 날, 달구벌 대구스타디움에서는 세계육상경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경기장은 후끈한 늦여름의 날씨보다 한층 더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제 막 남자 400m 준결승 경기가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모든 선수들은 1번 레인에서 8번 레인까지 각자 자신의 스타팅블록에 거북이처럼 엎드린 채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순간, 선수들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려 바닥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똑똑히 들릴 듯 경기장은 완전한 적막에 잠겼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로 출전한 8번 레인의 선수는 스타팅블록에서 총소리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모습만으로는 얼핏 보아 다른 선수들과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짧은 금발머리에 환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미남의 백인 청년이었다. 드디어 “땅―” 총소리가 울리고, 한순간 모든 소음을 잠재운 채 완벽한 고요에 빠져들었던 경기장은 엄청난 함성과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삽시간에 빠져들었다. 선수들은 총소리와 동시에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8번 레인의 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컨디션이 받쳐주지 않았는지, 아니면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는지 그는 8명 중 마지막에서 두 번째인 7위로 피니시 라인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날 대회에서 수천 명의 관중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고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사람은 400m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한 키라니 제임스도, 세계 육상의 전설 우사인 볼트도 아니었다. 400m 준결승전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로 골라인에 들어온 바로 이 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였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양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 육상 선수인 그는 패럴림픽 육상 100m, 200m, 400m 세계 신기록 보유자로서 그 이름 앞에는 언제나 ‘블레이드 러너’, ‘다리 없는 가장 빠른 사나이’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2011년 8월 대구에서 개최되었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그는 400m 준결승 진출, 1600m 계주 은메달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또한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대회에 1600m 계주 남아공 국가대표선수로 참가하기로 확정되었는데, 다리를 절단한 장애인이 올림픽에 출전해 비장애인들과 겨루는 것은 1896년 제1회 그리스 아테네 대회 이후 116년의 올림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 피스토리우스를 전 세계 스포츠 사에 남을 또 하나의 ‘히스토리’로 만든 남아공 출신의 위대한 육상선수 ‘블레이드 러너’였다! 또한 그는 2012년 미국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바 있다. “패배자는 결승선을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사람이 아니라 달려보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1986년 11월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의 샌톤 병원에서는 한 산모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벌써 여러 시간째 극한의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응애 응애 울음을 터뜨리며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을 빠져나왔다. 아기는 여자아이처럼 예쁘게 생긴 금발머리의 백인 사내아이였다. 3.3kg으로 정상 체중에 울음소리도 우렁차고 매우 건강해 보였다. 다만 한 가지를 제외하면……. 아기에게는 누구에게나 양쪽 다리에 당연히 있어야 할 종아리뼈가 존재하지 않았다. 종아리뼈는 정강이뼈와 함께 발목부터 무릎까지 이어져서 체중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도 기형이었다. 바깥쪽 부분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은 미완성의 발이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양쪽 발에 발가락이 딱 두 개씩,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만 있고, 안쪽 뼈와 뒤꿈치가 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들의 둘째아들이 최대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대안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들은 아이의 발을 어떻게 할까 하는 문제를 놓고 가장 현명한 조언을 구하고자 명망 있는 여러 의사들을 열정적으로 찾아다녔고, 모두 11명의 절단 전문의를 만나 심도 있게 상담했다. 아버지는 모든 상담의 말미에 의사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만약 이 아이가 선생님의 자식인데, 선생님이 직접 수술하실 수 없다면 누구한테 맡기시겠습니까?』 그들은 생후 11개월 되었을 때 아이가 최대한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해주기 위해 오랜 고심 끝에 양쪽 다리를 절단하기로 결정한다. 아기의 발이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게’ 생겼다는 점을 맨 처음 알아차린 사람은 담당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그렇다! 아버지는 의사에게 아이의 발이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딘가 다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이후 단 한 번도 아이의 부모는 자신들의 아들이 어딘가 잘못됐다거나 비정상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다른 아이들과 어딘가 다르지만 지극히 정상인 아이(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 관점은 아이의 부모가 스무 해 넘게 아이를 키우고, 누구나 가진 두 발이 없음에도 정상적인 발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들만 모여서 실력을 겨루는 (대구)세계육상경기대회나 (런던)올림픽 같은 최고의 무대에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육상선수로 마침내 길러내는 원천이자 궁극적인 힘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아이는 자기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어린 시절, 자신은 “적극성을 타고난 아이”였으며, “무슨 일이든 뒤로 빠지려 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참여해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한번 겨뤄 보고 싶어 안달을 하”는 아이였다고 고백한다. 달리기, 수영, 크리켓, 럭비, 자동차 운전, 오토바이 운전 등……. 실제로 그의 관심 분야는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게다가 아이는 “웬만해선 피스토리우스를 막을 수 없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활동적이다 못해 대단한 말썽꾸러기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단 한순간도 자신의 장애를 비관하거나 한탄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않고, 끊임없이 부딪치고 깨지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아이의 그런 도전정신과 용기, 그리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의 뒤에는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만 지극히 정상이다. 따라서 꿈꾸고 도전하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라는 한결같고 흔들림 없는 부모의 교육이 있었다. 『패배자는 결승선을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사람이 아니란다. 그냥 앉아서 지켜보기만 할 뿐 달려보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을 패배자라고 하는 거야!』 이것은 피스토리우스가 양쪽 다리 절단 수술을 받기 5개월 전쯤, 그러니까 생후 6개월 무렵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가 편지로 써서 남겨놓은 글이다. 어머니는 피스토리우스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 편지를 수시로 읽어볼 수 있도록 잘 간직하고 있었다. 『스물넷의 질주』는 선천적 장애로 양쪽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세계 육상의 정상에 우뚝 선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의 감동적인 인생 도전기이자 휴먼에세이다. 동시에 이 책은 취업난 등 현실의 암담한 벽 앞에서 쉽게 좌절하고 식은 커피처럼 열정이 식어 자신의 삶에서 아무런 가치와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고 딜레마에 빠진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20대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도전정신을 심어주는 훌륭한 힐링도서로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 또한 거칠고 험난한 무한경쟁의 시대에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스러워하는 30∼40대 부모들에게 귀한 지침과 노하우를 알려주는 자녀교육서로 읽어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책속으로 추가> 다시 그날 얘기로 돌아가자면, 오후 내내 나는 나대로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형이 방으로 들어왔다. 나를 쳐다보며 말없이 서 있던 형은 성큼 다가와 내 손을 잡더니 차도로 데리고 갔다. 빨간 차체의 파란 고카트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언감생심 꿈에라도 내가 그 차에 오를 거라 기대해 본 적 없었는데, 정말 놀랍게도 형이 손수 나를 이끌고 가 자기 뒤에 앉히는 게 아닌가! 운전대를 잡은 형은 오른손의 밧줄을 살짝 놨다가 확 잡아당겼고, 우리가 탄 고카트는 기세 좋게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고카트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형은 평소에 길 옆 제방에 다다라 차를 세우기 전에 약 50~60미터를 자유 낙하하듯 질주한 다음 침착하게 정차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우리가 바람을 가르며 달리다 그만 평소의 정차 지점을 순식간에 지나치고 말았다. 그 순간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또렷하다. 나는 형이 물리학의 법칙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줄 알았다. 예전에 형이 언덕 아래로 날아가는 모습을 종종 봤지만 바퀴가 그렇게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다. 우린 그 상태로 계속 질주했다. 100미터, 150미터, 200미터…. 도로 아래쪽 벽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던 그 순간, 고백하건대 이제 모든 게 끝이구나 싶었다. 전속력으로 벽에 부딪칠 차례만 남은 일촉즉발의 순간에 갑자기 형이 내 의족을 움켜쥐었다. 이 정신없는 여섯 살짜리 사내아이는 팔을 한 번 휙 하더니 내 다리를 바퀴와 타르 포장도로 사이에 가까스로 밀어 넣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몸이 덜컹 멈췄다. 벽까지 20미터도 안 남은 거리에서 고카트가 멈춰 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내 신발에 고이 붙어 있던 미키마우스가 다 쓸려서 유명을 달리한 점은 매우 유감스러웠다. 하지만 그 기회를 통해 내 의족에 대해 유쾌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허구한 날 고통을 주던 의족이 놀라울 만큼 훌륭한 쓰임새를 보여 주기도 하는구나! - 본문 중에서 (119~122p.) 닐과 나는 계속 친구로 지낸다. 그가 나와 우정을 이어가면서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닐이 나를 보면서 고통과 괴로움을 극복할 용기는 물론 계속 스포츠 세계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용기까지 얻는다고 느낀다. 현재 그는 남아공 패들스키 챔피언이다. 내 생각에 닐과 나는 우리 어머니의 또 다른 가르침을 제대로 구현해 낸 산증인인 것 같다. “절대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마. 결코 포기하지도 말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 봐.” 이 교훈을 우리 둘 다 몸으로 증명해 내지 않았는가! 우리 부모님은 뭔가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올바르게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정신을 심어 준 분들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통해 진정한 경쟁심을 배웠다. 단지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우리 형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종종 우리를 데리고 고카트 경주를 했다. 아버지는 경주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 아버지가 우리보다 체중이 더 나갔기 때문에 아버지의 카트가 우리 것보다 안정적으로 트랙에 딱 붙었다. 그렇지만 코너를 돌 때는 아버지가 우리보다 훨씬 애를 먹었다. 아버지를 이기기 위해선 코너링에 약한 아버지의 약점을 틈타 거기서 아버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 아버지는 내가 차근차근 승리를 거두는 법을 터득하게 하면서 내 또래 아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는 대여섯 명의 내 또래 친구들을 불러 벽 짚고 돌아오기 같은 경주를 붙여 보길 좋아했다. 이긴 사람은 제일 큰 케이크 조각 등을 부상으로 받았다. 나는 열두 살 즈음까지 누구보다도 재빠르고 날쌘 아이였다. 심지어 의족 없이 절단된 다리만으로도 민첩하게 돌아다녔다. 물론 그때가 지금보다 훨씬 체중이 덜 나갔다. 절단 부위 밑 부분에 뒤꿈치 피부를 이식하긴 했지만 현재 내 체중은 절단 부위의 피부가 견디기엔 너무 무겁다. 그 당시에는 종종 의족도 벗어 던지고 단거리를 질주해 경쟁자들을 수월하게 물리치곤 했다. - 본문 중에서 (65~67p.) 나는 나보다 앞서 가는 선수를 뒤쫓아 달릴 때 더 좋은 결과를 내는 육상 선수이다. 다시 말해 선두 주자를 추격해 달리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으면 8번 레인을 피하려고 한다. 곡선 주로가 있는 경기에서 가장 바깥 레인이라 다른 선수들 앞에서 달리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늘 쫓아갈 대상이 앞에 있는 1~3번 레인이 좋다. 그런 구도가 언제나 나를 강하게 자극한다. 목표 대상을 따라잡아 추월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레이스 막바지에 힘을 쏟아 부을 수 있다.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 스타팅블록에 발을 대고 웅크려 있을 땐 한두 차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다음 그대로 숨을 머금고 있어야 한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를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육상 선수들이 총소리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바람에 마침내 신호가 울리면 처음 몇 분의 1초 동안 곧바로 움직이지 못한다. 마치 총소리가 무슨 신호인지 잠깐 잊어버리는 듯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찰나이다. 그러므로 최면 상태처럼 가정하는 게 더 낫다. 나는 뛸 준비를 하고 있다, 총소리는 내가 달려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암시를 준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총소리 자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박차고 앞으로 나가는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방법을 쓰면 정신적으로 더 강해지고 트랙 위에서 더 빨라진다. - 본문 중에서 (127~128p.) 그날 오후 3시에 기자회견이 잡혀 있었고, CAS가 그 시각까지는 보도 통제를 요청하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으므로 우린 한동안 그 소식을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 매우 조심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우리는 예정 시간보다 30분 일찍 기자 회견장에 도착했고, 나는 괜히 헤벌쭉 웃거나 기자들에게 농담을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야 했다. 3시 정각이 되자 매니저 피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야기했다. “스포츠 중재재판소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엄청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커다란 환호성과 카메라 셔터 소리,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기자 회견장이 폭발해 버릴 지경이었다. 내 평생 다시 없을 벅찬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절대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 나는 날아갈 듯 기쁘고 뿌듯했다. 놀랍게도 기자회견 후 휴대폰을 켜자 무려 160개의 메시지와 셀 수 없이 많은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드디어 온갖 논쟁과 험담을 잠재우게 되었다. IAAF는 라민 디악 회장이 이번 항소 과정의 결과에 기쁨을 표한다는 내용으로 언론에 성명을 발표했다. 이 모든 것이 내겐 크나큰 기쁨이었다. 내가 CAS 앞에서 진술했다시피 내 인생은 한 번도 쉽게 흘러간 적이 없었지만, 운 좋게도 나는 스포츠계나 그 밖의 다른 분야에서도 신체 건강한 사람들과 평범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대회 참가를 금지 당했을 때 느껴야만 했던 것처럼 내가 장애인이라거나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전혀 없었다. 이제는 나의 미래를 마음껏 그려 볼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바야흐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돌아갈 때였다. 다시 달려야 할 시점! 내 꿈은 남아공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되는 것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으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리가 있든 없든 그저 ‘가장 빠른 스프린터’라는 담백한 수식어를 단 사나이가 될지도 - 본문 중에서 (198~2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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