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해역도시의 도시재생 사례를 통해
우리가 살고 싶은 지속가능한 도시를 생각하다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은 도시의 노후화된 지역이나 쇠퇴한 지역을 재활성화(Revitalization)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다차원적인 접근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환경의 개선을 넘어,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국립부경대학교 해역인문학 기획도서로 출간된 『동아시아 해역도시와 도시재생』에서는 부산, 인천, 요코하마, 고베, 사세보, 샤먼, 홍콩, 가오슝, 타이난, 싱가포르 열 개의 해역도시에서 도시재생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핀다.
해역도시는 역사적으로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해왔다. 도쿄, 상하이, 홍콩, 부산,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들은 항만산업 중심지를 넘어 동아시아 및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하며, 관광 및 문화산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동아시아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사회문화적 변화를 경험하면서 도심공동화, 산업경제의 쇠퇴, 주거환경의 악화, 역사문화 자산의 훼손, 커뮤니티의 붕괴 등의 문제에 직면해왔다. 이에 각 도시는 쇠퇴한 지역과 마을의 회복과 활성화, 삶의 질 향상 등을 목표로 다양한 도시재생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 책에서는 동아시아 10개 해역도시의 도시재생의 경험과 사례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에 대한 제안을 한다.
지나온 역사를 넘어 도시의 새로운 내일을 꿈꾸다
한국의 부산과 인천, 일본의 고베, 사세보, 요코하마의 도시재생 사례
부산포라는 작은 어촌에서 시작한 부산은 1876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관문도시로, 해방 이후에는 피난수도로, 196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항만도시로 변모했다. <해역도시 부산의 도시개발과 재생 사이>에서는 해양도시 부산이 겪어온 역사적 변화와 도시 개발, 재생 과정을 분석한다. 부산은 현재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산복도로 르네상스, 북항 재개발 등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역사문화 유산 보존과 주민 참여 문제 등의 과제도 남아 있다. 인천은 1980년대 경인공업지대가 한국 경제의 축이 되면서 발전을 경험했지만 2000년대 이후 첨단산업으로의 구조적 전환기에 이전과 같은 위상을 잃게 되었다. 더불어 인천 주변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원도심 인구가 대규모 유출되었다. <‘쇠퇴’의 도시에서 ‘회복’의 도시로>에서는 인천이 역사적으로 겪어온 도시 성장과 쇠퇴 과정을 분석하며 현재 인천이 직면한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해 도시재생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2장에서는 일본의 고베, 사세보, 요코하마의 도시재생 사례를 분석한다. 고베는 1995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도시 기능이 마비되고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고베시는 재난 상황을 기회로 삼아 적극적인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였다. 메리켄 파크는 지진의 상흔을 보존하고 기억하는 동시에 시민들의 휴식과 치유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하버랜드는 복합 쇼핑몰 개발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도시 이미지 개선에 기여했다. 일본 서단에 위치한 사세보는 태평양전쟁 시기 연합군의 ‘사세보 대공습’으로 도시가 괴멸되었고 전후에 상업항과 ‘평화산업항만도시’ 건설로 재출발을 모색하였으나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의 군사 전략 요충지가 됨으로써 군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 일본 해군의 시설이 있었고 태평양전쟁 이후 외국에 있던 일본인들이 귀환하여 머무는 인양민(引揚民) 수용소로 사용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던 사세보는 일본과 네덜란드의 우호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나가사키 오란다무라’를 시작으로 ‘하우스텐보스’라는 대규모 테마파크를 건설하여 관광도시로 재탄생했다. 일본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는 쇠락해가던 항만 지역에 첨단 건축물, 문화 시설, 공원 등을 조성하여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위상을 확립한 도시재생의 성공 모델로 꼽힌다. <도시재생의 성공 모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에서는 도시 환경 개선을 넘어 도시의 미래를 새롭게 디자인한 요코하마 도시재생의 과정을 분석한다.
유구한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찾다
중국 구랑위와 홍콩, 가오슝, 타이난, 싱가포르의 도시재생 사례
3장에서는 중국 구랑위와 홍콩의 사례를 분석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구랑위는 아편전쟁 이후부터 외국인 거류지, 화교 정착지 역할을 하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적 특징을 가졌다. 그러나 신중국 초기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기를 거치며 구랑위의 문화는 억압을 받게 된다. 그러다가 개혁개방 이후 진행된 지방 분권화로 구랑위는 다시 국제공동체 도시문화를 재현하게 된다. <구랑위의 도시개조 프로젝트>에서는 중국 개혁개방 이후 30년에 걸쳐 진행된 구랑위의 도시 개조 프로젝트를 고찰한다. <홍콩의 도시 변화와 홍콩인의 정체성 정리>에서는 홍콩의 도시 변화를 통해 도시 개발과 문화유산의 보존, 홍콩인 정체성 형성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살핀다. 도시 개발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문제 속에서 홍콩인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중국인이면서 동시에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유지하느냐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 홍콩 사회의 중요한 화두임을 강조한다.
4장에서는 가오슝, 타이난, 싱가포르의 사례를 분석한다. <‘문화사막’에서 ‘문화오아시스’로>에서는 타이완 최대의 항구도시 가오슝의 과거 번성했던 항구의 창고들을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켜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보얼예술특구의 사례를 제시한다. <지역이 예술과 만나다>에서는 타이완의 가장 유서 깊은 도시 타이난의 옌수이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이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릴 수 있음을 말한다. <싱가포르 차이나타운, 옛 모습 잃어버린 엇갈린 재개발>에서는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이 급속한 도시 개발 과정에서 겪은 변화를 통해 도시재생의 양면성을 밝힌다. 과거 중국 이민자들의 삶과 문화가 깃든 숍하우스와 마제스틱 극장 같은 역사적 건물들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차이나타운 본래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이 사례는 경제적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도시 개발이 장기적으로는 지역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물리적 환경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공동체의 활성화와 삶의 질 향상,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중요한 도구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다양한 도시재생의 사례는 많은 해역도시를 품고 있는 한국 사회의 도시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