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도박이라 말했지만 나는 믿었다.
내 시간과 영혼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때 행복해진다는 걸.”
『유랑하는 자본주의자』는 자본주의하에서만 가능한, 자본주의만이 줄 수 있는 이점을 누리며 몸소 헤쳐 나간 삶의 실험을 담고 있다. 저자는 노동이 아닌 투자 수익으로 생활하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 긴 공백과 탐색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영혼과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때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또는 더 많이 벌지 못해도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 부부가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고 세운 목표는 노동에서 영영 물러나겠다는 조기 은퇴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맞는 노동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그걸 통해 더 많은 부를 일구겠다는,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였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꿈을 이루려면 소득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고, 성취를 원한다면 자유는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하지만 저자에게는 그 명제가 의문으로 다가왔다. 한 가지 길밖에 가보지 않았기에 나온 답이라고 생각했기에 사지선다가 아닌 서술형 답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퇴직은 시간의 자유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집을 처분한 일은 자본의 여유를 선사했다. 여행에 시간과 자본은 필요하지만 고정적인 집은 필요하지 않다. 덕분에 원하는 일에 도전할 여유가 생긴 저자는 생각한다. 인생은 ‘선택한 대로 만들어가는 여정’이라고.
떠나보니 여행은 낭만보다는 도리어 진하게 농축된 자본주의의 축소판이었다. 여행이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이었으며, 매 순간이 경제적 선택이었다. 저자는 결국 돈은 ‘마음’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돈은 외부 요인보다 마음 깊숙한 곳의 소망에 따라 써야 하고, 인생에는 소득에 무관하게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었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 풍족하든 아니든 고통스러운 직업은 그만두었고, 꼭 먹고 싶은 음식은 사 먹었으며, 타인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소비는 하지 않았다. 저자가 보기에 현대 사회에서 먼저 익혀야 할 습관은 어떤 소비 후에 자신이 행복해지는지 아니면 공허해지는지, 그 판단을 똑똑하게 하는 것이다.
행복이란 나날이 계단을 오르듯 소소하게 발전하고
성취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는 것
저자가 평생직장으로 여겨지는 교직을 내려놓기까지는 10년에 가까운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퇴사했을 때의 감정은 의외로 ‘신난다’였다. 드디어 권태로운 일이 아닌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다는 설렘. 저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할 일’이 없어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던 시절을 추억하며, 그때 아무 효용도 없는 글쓰기가 주었던 순수한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을 떠올린다. 그리고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던 자신에게 그동안 필요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그 감정은 바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나날이 조금씩 발전하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뇌는 섬세해서, 매일 같은 강도의 미션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는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조금씩 달라지는 도전에서 매번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만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이다. 『유랑하는 자본주의자』는 행복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나날이 새롭게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 태도를 삶에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유랑쓰는 어떤 달은 영덕과 군산에서, 어떤 달은 말레이시아에서, 어떤 달은 멕시코 바칼라르에서 다채로운 세상을 전달했지만 3년간 수익이 마이너스인 유튜브였다. 그러나 수익이 나지 않는 채널을 접은 적도, 쉬어간 적도 없다. 모든 게 궤도에 오른 지금과 정해진 것 없이 막막했던 시절을 비교했을 때, 지금이 더 행복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던 그때에도 분명히 행복은 존재했고, 그 행복이 지금과 비교했을 때 결코 작거나 초라하지 않았음을 기억한다고.
『유랑하는 자본주의자』가 보여주는 삶은 겉보기에는 파격이지만, 중요한 것은 불안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하기를 택한 이 여정이 인생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타인이 인정해야만 가치가 생기는 조건이나 이름값이 아니라, 뇌에 건강한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자신만의 성취에서 온다. 『유랑하는 자본주의자』는 행복의 기준을 결정하는 것은 본인이기에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으며, 남과 다르게 살아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더 잘 살 수 있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경로를 이탈하면 낭떠러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길을 벗어난 곳에 삶이 있었다.”
학업-취직-결혼-내 집 마련-육아가 더 이상 모두에게 정답이 아닌 세상이다. 20대의 도배기능사 시험 응시율은 4년간 두 배가 되었고, 2022년에는 창업자 중 2030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 고등학교를 자퇴하는 10대는 수능에 집중하는 성적 최상위권과 일찍이 배달업으로 자기 자본을 모아 창업을 준비하는 경우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삶에는 단일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이 몸소 거쳐온 삶의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세상에는 살아 있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정답이 존재한다. 우리는 삶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이 선택이라는 것을 잊기 쉽다. 실은 삶의 순간순간이 모두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안다면, 벌거벗은 자신을 탐구하고 세상의 잣대에서 벗어날 용기가 있다면, 사회가 정해주는 답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답을 정답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핸들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틀어보니, 삶은 아름다운 거였다. 자유는 단순히 돈과 시간이 많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갖는 것이었다. 『유랑하는 자본주의자』는 모두가 외적 동기에 떠밀리지 않고 내적 동기에서 우러나온 삶을 살기를, 관성적으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미래를 선택하지 말고, 주도권을 손에 쥔 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