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레코드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책장을 여는 순간, 치유의 음악이 들려옵니다.”
- 「배철수의 음악캠프」 배철수 강력 추천 -
★★ 밀리의서재 소설 분야 1위 ★★
★★ 밀리의서재 북마스터 선정 1위 도서 ★★
★★ 2024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화제작 ★★
두 달 후 죽기로 결심했는데
웬걸, 너무 바빠서 죽을 시간이 없다…
여기,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포기하고자 하는 한 남자, 정원이 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삶의 마지막을 기다려왔다는 듯 정원은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천장에 노끈을 묶고 의자에 올라섰다. 의자만 발로 툭 차면 원하는 대로 세상에 이별을 고할 수 있었던 순간, 정원은 딱 두 달만 더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갑자기 죽음이 두려워졌거나 새삼스럽게 삶에 미련이 남아서는 아니었다. 단지 아버지가 남긴 6천여 장의 LP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유품이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가 살아온 증거이자 인생 그 자체’라던 누군가의 말이 불현 듯 떠올랐고, 자신에게 남겨진 LP판들이 지금은 모두 죽고 없는 가족과 함께했던 흔적이 새겨진 유일한 물건처럼 여겨졌다. 소중한 음반들이 쓰레기로 버려지도록 차마 둘 수 없었던 정원은 그 길로 ‘바람에 날리는 티끌’이라는 뜻을 지닌 풍진동에 LP가게를 열었다. 빈 건물 1층을 두 달짜리 깔세로 빌려 무작정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장사 수완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정원에게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고, 가게에 손님이 몰리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우습게도 정원은 어느새 자신과 약속한 두 달하고도 1년이 다 지나도록 너무 바빠 죽지 못하게 되는데…….
1년 전 죽으려 했던 사람에게 이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예상은커녕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런데 결국 정원은 죽을 새가 없어 살아남았다. 더 중요한 건 자신만 살아남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_본문 중에서
어쩌면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죽고 싶을 만큼 외로웠던 게 아닐까?
중고 LP가게를 배경으로 한 『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가게』는 다소 침체된 분위기로 시작한다. 정원은 어렸을 때부터 웃지 않는 아이였다. 성장하면서 점차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얼굴에 표정이 감돌게 되었어도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이 여전히 아주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가족을 잃은 후 더욱 깊어진 고독 속에서 삶을 포기하는 선택을 고려할 정도로 어두운 내면에 침잠해 있던 정원의 마음을 천천히 밝힌 것은 LP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이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두 작가, 임진평 영화감독과 고희은 작가의 특별한 만남에서 탄생한 이 소설은 마치 오래된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독자의 기억과 감정을 어루만진다. 삶의 무게에 지쳐 ‘한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이들에게 단단하고 깊은 희망을 전하는 이 소설은, 고희은 작가의 말처럼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다시 바라보고,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때로 가족이 되는 기적을” 꿈꾸게 한다. 같은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친구보다도 더 가까운,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LP가게의 손님들은 정원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소설처럼 우리는 혼자만의 동굴에서 벗어나 타인과 만날 때 비로소 삶의 무게를 덜고 일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라고 여겼던 LP가게의 사람들이 정원에게 마치 가족처럼, 운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먼저 떠나보낸 동생은 오히려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혈연이 아니어도 서로 선택하고 아낌없이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 존재, 그래서 역시 소중한 존재. 가족이든 친구든 의미는 조금씩 달라도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있음을 정원은 점차 깨달아가고 있었다. _본문 중에서
레코드판에 새겨진 연륜으로
흠집 난 영혼에게 건네는 속 깊은 위로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더 빨리, 더 많은 발전을 이루기를 요구한다.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고, 사회가 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것만이 당연하고 정상적인 삶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풍진동 LP가게는 이런 풍조를 거스르는 곳이다. 잡음이 섞이고 때로는 소리가 튀는 불완전한 존재라도 기꺼이 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가며 노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바늘이 천천히 LP판에 새겨진 홈을 따라가듯, 서두르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숨겨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상처와 아픔도 어느새 따스하고 깊이 있는 울림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렇기에 풍진동의 이상한 LP가게는 정원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은 날들을 살아가기 위한 구원의 장소가 된다. 이곳에는 성공과 실패를 재단하는 대신 각자의 속도와 음악으로 회복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생각에 외로워하고 있다면 아름다운 선율과 연대의 손길을 선뜻 내밀어주는 풍진동 LP가게의 문을 열어보자. 누군가의 온기가 그리운 날, 완벽하지 않은 영혼이라도 있는 그대로 환대받을 수 있는 이곳은 오늘도 레코드판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정원에게 이상한 LP가게는 그 마음들이 모여든 곳이었다. 정원을 지구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게 꼭 잡아준 마음들. 사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소중한 마음들이.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