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도성을 불태운 관구검은 고구려의 사서들을 탈취해 가고, 동천제는 자결한다. 을불 미천제가 낙랑을 수복하지만, 극성진공에 실패하고 모용이 일어난다!
3C 말 삼국시대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의 〈서진〉이지만, 이내 선비의 굴기가 시작된다!
치우천왕부터 문무대왕의 삼한일통까지 무려 3,500년에 이르는 아시아의 상고사를 다룬 대하역사소설 《고국》 9권 시리즈 중, 6권 〈中原의 쇠락〉 편이 출간되었다. 2C 후반 〈황건적의 난〉은 후한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중앙권력의 공백을 틈타 요동으로 파고든 공손도가 서부여와 손잡고 고구려에 맞서는 사이, 개혁군주 고국천제는 호족들에 의해 제거되고 우후가 산상제를 제위에 올린다. 발기가 공손도를 끌어들였으나 고구려는 낙랑(요동)의 땅을 상실하고, 혼란에 빠진 중원진출의 기회를 날려버린다. 중원 최강의 자리에 오른 조조는 208년 손권과 유비의 오촉동맹에 맞선 〈적벽대전〉에서 참패하고, 흉노와 오환이 사라진 초원에는 가비능이 일어나 선비를 규합한다.
200년경 황산(낙동)강 일대에서는 가야가 동쪽의 임나를 누르고 〈금관가야〉로 재편되지만, 철무역을 놓고 포상8국과의 10년 전쟁에 돌입한다. 사로의 내해왕은 금관가야를 지원해 승리하고 가야권의 맹주로 부상하지만, 백제의 고이왕은 말갈과 다투기 바빴다. 220년 조비가 유씨 한나라 4백 년 역사를 끝내고 〈위〉의 황제에 오른다. 제갈량의 5차 북벌을 이겨낸 위가 요동으로 눈을 돌리자, 서부여와 공손연의 남북동맹은 고구려와 위의 동서동맹에 맞선다. 238년, 사마의가 〈양평전투〉에서 공손연의 목을 베고 요동을 차지하자, 대노한 동천제는 즉각 위와의 전쟁에 돌입한다. 246년 관구검의 2차 원정에 동천제가 역전패 당하면서 환도성이 불타고, 동천제는 자책감에 시원에서 자결을 택한다.
사로에서는 소문 출신 옥모태후가 부친 김구도의 지원에 힘입어 조분과 첨해 두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262년 미추왕이 김씨 왕조를 여니 경주의 인구가 80만에 달하던 평화로운 시대였다. 조씨 위나라를 꺾고 〈서진〉의 황제에 오른 사마염이 280년 오나라 원정에 성공하니 마침내 백년 삼국시대를 끝낸 사마씨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그러나 혈족 위주의 봉건시대로 퇴행한 결과 〈8왕의 난〉으로 서진 또한 3대 만에 사라지고, 강남으로 달아난 사마예가 316년 〈동진〉을 건국한다. 그 와중에 흉노 출신 유연이 일어나 〈전조〉를 세우면서 비로소 〈5호 16국〉시대의 서막을 알린다.
창조리의 〈후산의거〉로 태왕에 오른 을불 미천제가 313년, 서진이 어지러운 사이 요동수복에 성공한다. 이후 우문, 단선비와 연합으로 모용선비 토벌을 위한 〈극성진공〉에 나서지만, 노련한 모용외에게 참패하고 이후로 고구려는 중원을 돌아보지 못한다. 남북으로 분열된 〈서부여〉는 미천제의 요동전쟁에 내밀린 끝에, 비류왕이 이끄는 〈백가제해〉 세력이 반도 웅진으로 피해와 새로운 부여백제 시대를 연다. 반도사관에 젖은 우리는 3C를 전후한 삼국지 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중원 및 북방민족들과 치열하게 쟁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고국》6권을 통해 한족의 시대가 끝나고 북방민족의 찬란한 〈5호 16국〉 시대가 열리는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