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날 노을의 풍경은 찬란하면서 장엄하기까지 하다. 또한 그 이면을 마주할 때면 허탈하여 회한의 씁쓸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모든 생명체에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노을, 즉 황혼의 시기가 있다. 화자 역시 연륜과 생의 내공이 축적된 터라 그려 낼 수 있는 그만의 풍경화가 있다. 낮고 장엄한 첼로의 음감 같기도 한 노을빛 상념이 폐부에 꽂히는 것이다.
누구나 나이테가 늘어 갈수록 생의 유한성 앞에서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 ‘저 신비한 노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나도 물들어 녹아들 수 있을까’ 의문형 문장이지만 나도 노을빛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답고 뜨겁게 타오를 수 있기를 소망하는 염원이다.
화자는 아버지가 놓고 간 마지막 풍경을 애잔하지만 담담히 진술한다. 일생을 다 소비한 후 노을의 시간 저편으로 사라져 간 아버지의 뒷모습을 회상하면서 망연해지는 것은 단순한 슬픔이나 회한의 감정을 뛰어넘는 고차원적 연민의 정서이다.
석양을 바라보며 일몰을 관조하는 여인의 눈망울에 비친 습기가 전이되어 온다. 어쩌면 자신도 그 생몰을 체감하는 지점을 통과하는 중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 늘 통회는 때 늦게 찾아오는 것인지 인생의 덕목 중 효성의 애틋함보다 미숙함을 공감하게 만든다. 어쩌면 누구나 가슴속에 걸린 아픈 그림들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풍경이 되지 못한 순간들이/ 삭막한 겨울날의 어둠 속으로/ 쓸쓸히 사라지고 있”다고 고백하는 마지막 연이야말로 우리가 손댈 수 없는 불가항력적 철학이요, 공감각적으로 다가오는 화인(火印) 같은 한 장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