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포엣 시리즈 42권으로 김안 시집 『귀신의 왕』이 출간되었다. 2004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안의 다섯 번째 시집으로 모두 2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미메시스」라는 동일한 제목의 시로 시작하고 끝나는 이번 시집은 신중하게 만들어진 미로처럼 느껴진다. 인간적인 마음과 인간이 되지 못한 마음, 인간 그다음의 것인 듯한 마음들이 뒤엉키고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이 혼재되어 있는 미로 같은 책이다. 으스스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이 시집의 입구로 무사히 진입해 수록된 시편들을 즐겁게 헤매며 마지막 작품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으스스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
“나는 안개처럼 떠다니는 흐릿한 이야기일 뿐이야.”
김안은 미로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자로서 그 입구에 「미메시스」라는 작품을 배치해두었다. 이 작품은 “한 승려가 온몸에 불이 붙은 채로 걸어가고” 있는데 그에게서 나는 “아주 맛있는 냄새”를 맡고 그 뒤를 뒤따른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시집의 출구에도 역시 「미메시스」라는 작품이 배치되어 있고 이 작품은 “그해 겨울, 나는 죽은 것 같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시들 속에서 죽음은 아주 가깝고 또 언제든 닥칠 수 있다. 화자는 할 말을 미처 못하고 죽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를 내주고 또 그를 옮기기 위해 입을 빌려주려는 것처럼 늘 그 불과도 같은 죽음으로 다가가 기꺼이 껴안는다. 두 작품은 거울처럼 마주 보고서 이 시집의 미로를 더욱 견고히 만든다. 탈출하려는 당신을 다시 또 매혹시키는 어떤 힘들이 시집 곳곳에 녹아 있다.
“이야기의 길목처럼, 낡은 책이 펼쳐져 있었다.”
으스스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들은 독자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그전에 이야기에 매혹된 사람은 물론 시인이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것은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리는 사람처럼. 으스스한 세상의 어두운 풍경들에게 자신의 귀와 입을 빌려주고 몸까지 내어줄 준비가 된 사람처럼. 그를 홀리는 것은 이야기 그 자체이지 다른 것은 될 수 없다. 「진상들」과 같은 작품은 몽환적인 색채를 띠는 다른 작품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시인의 시 속으로, 미로 속으로 초대받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신 시인이 초대하는 이들은 외로운 자들, 사라진 자들, 가여운 자들이다. 그런 자들의 목소리를 오래 견딘 탓에 슬픔에 겨워 있는, 그렇지만 무너지지 않으려고 하는 안간힘이 시 속에 녹아 있는 듯도 하다.
김안 시인의 『귀신의 왕』은 한제인 번역가의 영역으로 영문판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