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NO! 진지하면 지는 거야!”
조롱이든 혐오든 재밌으면 무엇이든 허용되는 가면 놀이의 세계,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최전선에서 시대를 읽는 마이너 리뷰 갤러리
이번엔 이 험난한 인터넷 문화 속에서 당신이 살아남는 방법을 말한다
퇴근길 지하철. 일상적으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알고리즘에 뜬 유튜브 영상을 본다. 5분가량의 영상이 끝나고,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기 전 댓글을 본다. 친절한 댓글부터 조롱과 억까(억지로 비난), 다시 그 댓글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댓글까지 다양한 양상의 텍스트가 보인다. 가끔 유튜브 댓글 창을 보면 내가 방금까지 있던 오프라인의 일상과 온라인 세계가 같은 현실인지 혼란스럽다. 한국의 인터넷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재밌지만 맵고, 웃기지만 혐오가 섞인 이 무진장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린 무엇이 되어야 할까?
다양한 문화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시대를 읽는 ‘마이너 리뷰 갤러리’. 첫 번째 책 《오타쿠의 욕망을 읽다》를 통해 앞으로의 대중문화는 더욱 서브컬쳐스러워질 것을 예고했다면, 이번 두 번째 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살아남기》는 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90년대생들의 주 무대 인터넷 커뮤니티를 다룬다. 한국 인터넷 밈의 대부분은 이 조롱과 혐오가 뒤섞인 세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발생한다. 〈일간베스트저장소〉, 〈여성시대〉, 〈루리웹〉, 〈워마드〉, 〈블라인드〉 등 다양한 커뮤니티가 존재하지만, 한국 인터넷 문화의 감성 기둥을 만든 사이트는 〈디시인사이드〉이다. 그들의 감성 기둥을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하자면 ‘비웃음’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을 조롱하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이 ‘비웃음’의 감성은 쾌락의 공간 〈디시인사이드〉에서 만들어졌다.
이 책은 특정 웹사이트의 역사나 밈의 계보를 추적하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인터넷 밈을 만들어내는 주체들이 어떤 정서로 특정 밈을 사용하고, 그 밈을 통해 어떤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지 말하는 책이다. 저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직접 활동했던 당사자로서 내부자의 감정과 외부자의 시선을 모두 전달한다. 그리고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커뮤니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인터넷 지식과 행동양식을 설명한다. 다양한 밈을 소개하는 이 책의 각 꼭지에선 크게 세 가지 파트로 내용이 구성된다.
첫째, 그 인터넷 밈은 어떻게 나왔나?
해당 인터넷 밈이 나온 맥락과 감정에 관한 이해는 해당 커뮤니티에 관한 분석 없이는 있을 수 없다.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여성시대〉 등 니 편 아니면 내 편만 있는 각 커뮤니티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인터넷 밈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주로 특정 집단을 조롱하려는 목적이 대다수이다.
둘째, 조롱과 혐오의 메커니즘
특정 커뮤니티는 특정 혐오를 통해 형성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밈이 어떤 집단을 혐오하고 있는지 알아보면서, 조롱가 혐오가 뒤섞여 발생하는 인터넷 밈의 확산 과정을 알아본다. 그 과정에서 해당 밈을 사용하는 집단의 정동까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갈등’의 공간처럼 생각하지만, 생각이 다른 커뮤니티들은 더는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조롱하거나, 아예 다른 집단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근데 ‘나와 생각이 다른 집단’을 조롱하지 않으면 누구를 조롱할까? 조롱할 대상이 외집단이 아닐 때, 타깃은 내집단으로 바뀌게 된다.
셋째, 조롱당하며 조롱하는 인터넷 생존 전략
“가만있음 긁, 반응하면 긁, 이미 진 싸움 아님 뭐냐고.”
(래퍼 ph-1의 맨스티어 디스곡 〈 BEAUTIFUL〉 中)
가면이 먼저 벗겨진 사람이 지게 되는 쾌락의 공간.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과몰입 금지이다. 긁히지 않고 즐기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이 공간에 발을 들인 당신은 어떻게든 조롱당하게 되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친구들은 당신이 누군지 보다, 당신이 속한 집단이 어떤지를 더 빠르게 파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집단에 붙은 프레임, 편견으로 당신을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은 이런 세태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조롱받을 것을 감수하고, 세계의 어떤 사람이라도 비웃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가면 놀이에 익숙해지는 순간 당신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원주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 문화를 분석하는 책은 이미 많이 나왔다. 그러한 책들의 상당수는 인터넷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타자화하며 분석한다. 한 발짝 떨어진 관점에서 분석한다는 건 사회과학에서 불가피한 스탠스이다. 때문에 이 책은 ‘분석’이 아닌 ‘생존법’을 말하는 것이다. 일단 저자가 ‘가이드’인 척하는 ‘원주민’이다. 인터넷은 점점 더 현실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우리는 난장판 같은 인터넷 문화와 그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커뮤니티 친구들을 늘 타자화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젠틀한 현실 세계에 사는 우리들의 혼란스러운 무의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