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의 덩굴 숲에서 하루라도 밤하늘을 보지 못하면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시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즐겨 읽는다는 시인은 밤마다 대우주의 공간에 자신을 펼쳐놓는다. 그때 우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파도와 바람과 별, 대자연과 내면의 열정이 어우러져 자유롭게 흘러나오는 춤사위가 그것이다. 그럴 때 시인은 “명랑한 뒤안”에서 “쓸쓸하다는 말 대신에 /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우리 춤춰요」) 춤을 추자고 권유한다. 상상해본다, 유학산 자락에 지어놓은 “덩굴 숲”에서 매일 밤 대우주의 회전무回轉舞에 맞춰 맨발로 춤추는 아프로디테. “큰 눈동자”의 속박에서 벗어난 “뒷마당”의 검은 밤, 차가운 심장에 잉걸불을 지피고 황홀하게 아프게 추는 춤. 타오르는 불꽃 한 자락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몸짓, 우주의 율려로 춤추는 살의 노래를 듣는다.
— 장옥관, 시인, 전 계명대학교 교수
해를 앞세우고 산이 오고 있다
종갓집 들어서는 집안 어른같이
마을 인사 나서는 장년같이
차례상 앞으로 다가앉는 공손한 자손같이
높은 산이 오고 있다
한 사람 뒤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층층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끄트머리 내가
굽이굽이 둥근 능선을 그리며
수굿이 장엄하게
한 세계가 오고 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조선의 태양을 앞세우고
큰 사람이 오고 있다
— 「산이 오고 있다」 전문
이순화 시인의 「산이 오고 있다」는 장중하고 울림이 큰 대서사시이며, 역사의 발전법칙에 따른 ‘조선의 태양’을 그 주제로 다룬 시라고 할 수가 있다. 해를 앞세운 산이 오고 있고, “종갓집 들어서는 집안 어른같이/ 마을 인사 나서는 장년같이/ 차례상 앞으로 다가앉는 공손한 자손같이” “높은 산이 오고 있다.” “한 사람 뒤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층층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끄트머리 내가/ 굽이굽이 둥근 능선을 그리며/ 수굿이 장엄하게/ 한 세계가 오고” 있고, 요컨대 “이글이글 타오르는 조선의 태양을 앞세우고/ 큰 사람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산소와도 같고, 이 세상의 숨구멍과도 같다. 이 역사의 숨구멍을 통해서 조선의 태양이 떠오르고 큰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미래의 인간의 이상형이며, 인류 역사의 신기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렇다. 환인, 환웅, 단군 등— , 아름다운 것은 우리 한국인들 밖에는 없는 것이다.
거기서 뭐하세요
덩굴 숲에 들어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퍼렇게 물든 손으로
또 알겠니, 새벽이 오면 내 몸에
물 흐르는 소리 들릴지
가시덩굴 칭칭 감고 그렇게
꽃피우기 원하세요?
얘야 발바닥이 가렵구나
젖가슴이 저릿저릿 하는구나
들리지 않니?
물길 드는 소리
꽃망울 벙글어
피톨 미쳐날뛰는 소리
새벽이 오면
내 몸에 퍼런 물 흐르겠지
덩굴 숲 우거지겠지
울컥, 헛구역질
시퍼런 달빛 쏟아내겠지
— 「덩굴 숲」 전문
이순화 시인의 「덩굴 숲」은 생명의 숲이자 우리 인간들의 삶에의 의지의 비옥한 텃밭이라고 할 수가 있다. 덩굴은 삶에의 의지의 가장 구체적인 증거이고, 꽃은 모든 생명체의 목적이자 그 결정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화급한 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순화 시인의 「덩굴 숲」은 원시림이고, 성적 욕망이 자기 자신의 가시울타리를 두르고 꽃을 피우는 곳이다. 모든 생명체는 평등하지만, 그 꽃을 피우는 일에는 “얘야 발바닥이 가렵구나/ 젖가슴이 저릿저릿 하는구나/ 들리지 않니?/ 물길 드는 소리”라는 시구에서처럼,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양보를 하지 않는다. 성욕은 물길이고, 물길은 흘러 넘치며, 물은 흐르고, 또 흐른다.
최종심급은 성욕이고, 이 성욕은 어느 누구도 감추거나 회피할 수가 없다. 토마토와 사과도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열매를 맺고, 은행나무와 대추나무도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열매를 맺는다. 새우와 멸치도 그들의 배가 터지도록 산란을 하고, 꽃게와 오징어도 그들의 배가 터지도록 산란을 한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가시덩굴 칭칭 감고 그렇게/ 꽃피우기”를 원한다는 것이고, 꽃을 피운다는 것은 “꽃망울 벙글어/ 피톨 미쳐 날”뛴다는 것이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유아론唯我論적이고 절대적이며, 그것은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의 구체적인 증거인 가시덩굴로 나타난다. 가시덩굴은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들에 대한 결사항전의 표시이며, 이 ‘사즉생의 각오’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성욕은 꽃이고, 꽃은 아름다움이고, 이 아름다움에는 수치심이 없다.
남자는 씨 뿌리고, 또 뿌리는 존재이고, 여자는 낳고, 또 낳는 존재이다. 이 남자의 바람기와 여자의 바람기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며, 모든 생명체의 기원이 된다.
“새벽이 오면/ 내 몸에 퍼런 물 흐르겠지/ 덩굴 숲 우거지겠지”라는 덩굴 숲의 생명력이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고, 또한, “울컥, 헛구역질/ 시퍼런 달빛 쏟아내겠지”라는 덩굴 숲의 생산력이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은 자연의 소리이고, 이 자연의 소리는 덩굴 숲의 소리이다. 모든 꽃은 우연히 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걸고 피는 것이다.
이순화 시인의 「덩굴 숲」 앞에서는 모두가 다같이 천하무적의 역전의 용사가 된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그들은 어느 새 산란을 마친 연어들처럼 죽어간다.
산다는 것은 순교이고, 거룩하고 장엄하게 꽃을 피우고 죽는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
이리 슬픈 노래 들어보셨나요
나는 당신의 기타줄
나는 당신의 악보
고개 들어 나를 퉁겨봐요
강물은 출렁출렁 춤추고
산맥은 넌출넌출 두 팔 흔들고
아침 햇살은 관목숲 조율공
바람은 공중에 조율사
나는 당신의 아름다운 기타줄
나는 당신의 슬픈 악보
나는 커튼 새로 스미는 달빛
나는 들창문을 두드리는 찬비
— 「우리는 저마다의 기타줄」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