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시적이며 아름다운 밤의 세계가 펼쳐지는
파리의 ‘높은 곳’을 향하여
일상의 소란과 분주가 잦아든 깊은 밤
파리의 별빛 아래서 펼쳐지는 자유와 문학 예찬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의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하고 각박한 현실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삶의 근간인 가족과 친구, 문학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유의지를 지켜내는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이들의 일상을 그린 소설 《밤의 몽상가들Vers les hauteurs》들이 찾아왔다. 이 책의 지은이 뤼도빅 에스캉드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소설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도시 등반, 즉 ‘높은 곳을 향하여’ 남몰래 건물을 올라가 대도시 파리의 지붕 위를 탐사하는 두 남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파리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생제르맹데프레. 한낮의 소란과 활기가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뒤 조용히 이 구역의 건물을 오르는 두 남자가 있다. 일상복 차림으로 철제 난간, 함석 기둥을 붙잡고 석재의 틈을 비집고 오르느라 재킷은 찢어지고 새 신발은 여기저기 긁히지만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이들의 지붕 탐사를 눈치챈 경찰이 언제든 위법한 행동을 적발하기 위해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는데도 이들의 도시 등반은 멈출 줄 모른다. 이들을 땅 위에서 하늘로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
어둠 속 지붕들이 드러내 보이는 아름다움이 동화의 한 장면 같다. 잠시 나는 온갖 장애물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활기찬 맥박을 되찾은 도시의 모습을 음미한다. 내 움직임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선으로 이 구역에서 저 구역으로 건너뛰며, 나는 내적 자유의 힘을 느낀다. 저 아래에서는 파리의 압도적인 크기가 사람을 짓누르지만 여기에서는 영혼을 고양시킨다. _본문 중에서
에밀 졸라, 폴 베를렌, 랭보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밤의 풍경
주인공인 뤼도빅은 프랑스의 유서 깊은 갈리마르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작가이다. 적요한 뜰을 마주한 사무실에서 커피 향기에 둘러싸여 수많은 원고를 읽을 때,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작가를 발견할 때의 행복, 기대, 몰입은 그에게 최고의 기쁨을 안겨주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은 녹록지 않다. 두 아이를 둔 이혼 가정의 아버지인 그는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파리로 이사를 결심하면서 수많은 고민과 결정에 직면한다. 파리는 더 이상 젊은이와 낭만의 도시가 아니라 부르주아의 본산으로 변모한 지 오래다. 탐욕으로 가득한 파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교외로 밀어냈고, 은행과 다국적기업이 새로운 주인으로 그곳을 차지해버렸다. 어느 날 현관 열쇠를 잃어버린 탓에 생쉴피스 성당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우발적인 ‘도시 등반’. 오스만 시대풍의 낮은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는 생제르맹데프레 구역에서 지붕 탐사에 나선 두 사람은 자신들을 옭아매는 다양한 문제와 관계를 떨쳐내고 자유를 맛본다.
전면에는 몽파르나스 타워가 있고 그 너머에는 에펠탑, 북쪽으로는 사크레쾨르 성당, 서쪽으로는 팡테옹의 돔이 로마의 환영처럼 파리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불 밝힌 창들의 희미한 빛이 도시를 밝히고 빛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_본문 중에서
이들이 남몰래 떠나는 지붕 위 모험에는 늘 문학과 자유에 대한 애정과 열망이 함께한다. 한밤중 지붕 위에서 마주하는 파리는 더 이상 현실적인 문제들로 그들을 옭아매던 대낮의 파리가 아니다. 그들을 압도하며 억누르던 각박한 대도시가 아니라 영혼을 고양시키는 마법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뤼도빅과 뱅상은 지붕으로 오르기 위해 다양한 곳을 이동하면서 파리 곳곳에 산재한 위대한 문학의 유산을 확인하고, 독자들은 두 사람이 그들의 삶과 시대를 구성한 작가들과 작품들, 현대 유럽과 프랑스를 만들어낸 시대정신을 논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잠시나마 신산한 현실에서 벗어난다. 누구의 방해도 없는 ‘높은 곳’에서 포도주 한잔을 곁들여 문학과 자유를 이야기하며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의지와 에너지를 얻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우리 또한 삶의 의지를 조심스레 북돋운다.
그 위에서 그들은 집세 걱정과 연애의 고충과 고질적인 불면증을 잊는다. 미뉘 출판사의 지붕 위에서 나치 점령기의 레지스탕스 작가들을 불러온다. 베케트, 나탈리 사로트, 뒤라스, 다니엘 페낙, 앙드레 지드, 베를렌, 에밀 졸라, 호메로스, 사르트르, 루이 아라공, 아르튀르 랭보, 모리스 삭스,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 오르기와 읽기가 만난다. 내일의 출근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은 파리의 지붕 위로 올라가 거기에서 머문다. _옮긴이의 말에서
그러나 뤼도빅의 잦은 지붕 등반이 불러일으킨 이웃과의 갈등에 뤼도빅은 결국 파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고, 뤼도빅과 뱅상의 충동적인 지붕 탐사도 끝을 맺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지붕 위에서 함께했던 시간은 강렬한 행복의 순간으로 남는다. 그리고 뤼도빅은 뱅상과 떠난 암벽등반에서 “물리적인 차원을 훌쩍 넘는, 무한히 높은 차원 속의 지붕을” 발견하고, 우리의 근원적인 부분과 단절된 채 살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다. 우리와 자연을 연결한 끈을 끊어버린 대도시의 삶에 저항해 직접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결심한 뤼도빅은 어긋나버린 연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로, 다시 한 번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들”을 찾아나서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