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지성 민세 안재홍 선생이 쓴
1926년 영호남 지역의 풍경과 성찰
이 글은 1926년 봄 민세 안재홍의 영호남 기행문을 풀어 쓴 것이다. 민세는 1926년 4월 16일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열리는 ‘경남 기자대회’를 계기로 경성(현재의 서울특별시)을 떠나 고향 진위(현재의 평택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경부선 길을 따라 영호남행을 시작했다. 여행 기간은 1926년 4월 13일부터 4월 26일까지였고 같은 해 4월 18일부터 6월 2일까지 자신이 주필로 재직했던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이 글의 일부는 해방 이후 「춘풍천리」, 「목련화 그늘에서」라는 제목으로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청소년들의 사랑을 받았다. 민세는 다수의 기행문을 남겼으나 현재까지 책으로 출간된 것은 1931년에 나온 『백두산등척기』 뿐이다.
민세가 쓴 기행문의 특징은 ‘체험적 글쓰기를 통한 실제적 기행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자칫 감정 과잉에 빠져 감상적인 글로 흐르거나 일방적인 정보 전달에만 급급해 문학성을 갖추지 못한 글쓰기로 전락해 버리기 쉬운 것이 기행문이다. 글쓴이의 체험에서 얻은 느낌이나 깨달음을 기술하는 게 기행문이 속한 교술 갈래의 장르적 특징이기는 하지만, 민세의 기행문은 체험적 글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유명한 사적지를 둘러보는 관광, 또는 한가롭게 유람한 후 남긴 소감문의 차원이 아니며 관념적이고 계몽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한 현학적인 글도 아니다.
언론인으로서의 직업의식이 반영된 현장성, 망국의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반영된 시대성, 조선인 개인으로서의 우리 국토와 역사, 민족에 대한 애정이 담긴 민세의 기행문은 말하자면 실제적 기행문이다. 바로 이 점이 이광수 기행문의 심미적 글쓰기, 최남선 기행문의 이념적 글쓰기와 구별되는 안재홍 기행문의 특징이자 우리가 민세의 기행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민세에게 여행은 당시의 시대적·사회적 상황을 온몸으로 감각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부산으로 향하는 경부선의 여행 경로에서부터 흐르는 강물, 차창 밖으로 보이는 조선 사람들, 흩날리는 벚꽃의 이파리 하나까지, 여행 중 감각한 모든 것이 경제, 문화, 정치 등 담론의 차원에서 기록되었다. 여기에 해박한 역사 지식과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고전의 인용이 더해져 민세의 기행문은 한층 더 깊이 있는 문학작품으로 읽힌다. 천천히 여러 번 읽으며 곱씹을수록 98년이라는 시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민세의 통찰력과 문체의 아름다움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926년 당시 민세의 기행은 실시간으로 신문에 연재되었고, 독자들은 그의 여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지금은 비록 실시간은 아니지만 이 영호남 기행문을 통해 민세의 여정, 견문, 감상을 공유함으로써 민세의 체험을 상상해 보게 된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상상력은 이 글을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음미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2026년이면 이 기행문이 발표된 지 100년이 된다.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민세의 주옥같은 기행문을 현대어로 풀어 일반 독자와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 수필을 통해 그동안 언론인이나 정치가로 알려졌던 민세가 한국 근현대 수필문학사에도 중요한 작가로 자리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