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국에 출간된 역사 분야 국제적 베스트셀러★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선데이타임스』 ‘올해의 책’(2012년)★
★영어권 걸작 역사 논픽션에 수여하는 ‘펜 헤셀-틸먼상’ 수상★
★이탈리아 ‘내셔널 체라스코 역사상’ 수상★
★체코 12부작 라디오 시리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각색 저본★
제2차 세계대전은 다시 정의내려야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물리적 인프라뿐만 아니라 국가를 온전한 국민공동체로 통합하고 존립케 하는 온갖 제도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일반의 상식과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의 패배로 종결되지 않았다. 동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유럽 전승기념일(1945년 5월 8일) 이후에도 폭력 상황이 이어졌다. 유고슬라비아에서 티토의 군대는 적어도 1945년 5월 15일까지 독일군을 상대로 총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폴란드에서는 나치의 개입으로 점화된 내전이 수년간 격렬하게 이어졌다.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에서 민족주의 빨치산은 1950년대까지 소련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심지어 일부 폴란드인은 자신들이 소련을 최종적으로 몰아내는 1980년대를 전쟁 종식으로 보기도 한다.
전후, 전쟁의 여파 속에서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이웃을 사랑할 수 없었다. 독일인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 비난받았고, 독일에 부역한 자 역시 그만큼 혹독한 대접을 받았다. 전쟁 직후 대부분의 복수는 주로 두 부류의 집단에 집중됐다. 그릇된 신(가톨릭교, 그리스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가 섬기는 신)을 숭배하거나 신을 믿지 않는 자. 잘못된 인종이나 국적에 속한 자. 이에 따라 전쟁 중에 크로아티아인은 세르비아인을 학살했고, 우크라이나인은 폴란드인을 죽였고, 헝가리인은 슬로바키아인을 탄압했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유대인을 박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추축국과 연합국 간의 단순한 영토 분쟁으로만 묘사하는 건 충분치 않다. 이 전쟁에서 벌어진 가장 잔학했던 어떤 사건들은 영토와 무관한, 인종이나 국적과 연관된 것이었다. 가장 사악한 전투 중 일부는 세계대전을 빌미로 오랫동안 쌓인 불만을 표출하려는 각국의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크로아티아의 극우 민족주의 집단인 우스타샤는 인종적 순수성을 위해 싸웠다. 슬로바키아인, 우크라이나인, 리투아니아인은 민족해방을 위해 싸웠다. 많은 그리스인과 유고슬라비아인은 군주제 폐지(또는 왕정복고)를 위해 싸웠다. 많은 이탈리아인은 중세 봉건제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웠다.
1945~1947년의 인종 청소, 수천만 명의 추방
독일인은 전쟁이 끝난 뒤의 수개월을 ‘슈툰데 눌Stunde Null(제로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역사의 모든 상흔이 말끔하게 씻겨 제로 상태가 된 전쟁 직후는 역사가 다시 전진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미심쩍다. 과거의 상처를 깨끗이 씻고 제로 상태에서 새로 출발한 역사는 없었다. 복수와 징벌이라는 전쟁의 여파가 유럽인 생활의 모든 영역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몇몇 국가는 영토와 자산을 박탈당했으며, 정부기관과 사회기구는 청산됐고, 민족 공동체들은 전시 중에 저지른 행위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협박을 받았다. 일부 최악의 보복 행위는 개인들에게 가해졌다. 유럽 전역에서 독일인 민간인들이 구타당하거나 체포되거나 노예노동에 처해지거나 단순한 이유로 살해당했다. 나치에 협력한 군인과 경찰은 체포돼 심한 고문을 당했다. 독일 병사와 성관계한 여자들은 삭발당하고 발가벗겨져 거리에서 조리돌림되었다. 수백만 명의 독일인, 헝가리인, 오스트리아인 여성이 강간당했다. 전쟁의 여파는 역사의 상흔을 말끔하게 씻기는커녕 공동체와 국가들 간에 깊은 앙금을 남겼을 뿐이며, 오늘날까지 해소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
실제로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민족 갈등이 악화되었다. 유대인의 희생은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되었다. 소수민족은 각지에서 다시금 정치 투쟁의 표적이 되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나치의 만행만큼이나 혐오스러운 잔혹 행위가 발생했다. 또한 전쟁 직후기는 여러 인종을 분류하고 격리해 차별하려던 나치의 온갖 노력이 논리적으로 어떤 결말을 가져왔는지를 보여줬다.
1945년부터 1947년까지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게 자행된 인종청소에 의해 수천만 명의 남성과 여성, 아동이 자국에서 추방됐다. 전후기를 ‘유럽의 기적’이라 찬미하는 이들은 이 부분에 대해 거의 논의하지 않았고, 심지어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설령 동유럽 전역에서 독일인이 추방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이와 비슷하게 쫓겨난 여러 소수민족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전쟁 직후 유럽이 열어젖힌 서사는 재건과 부흥에 관한 내용이 아닌, 무정부 상태로 전락한 역사였다. 수십 권의 빼어난 책이 개별 국가(특히 독일)의 사건들을 다루기는 했지만, 그것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면서’ 유럽 대륙을 전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소홀히 했다. 요컨대 온 유럽에서 궤를 같이하는 주제가 되풀이됐을 뿐이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사는 제대로 쓰인 적이 없다. 토니 주트의 『전후 유럽』을 포함해 유럽 대륙 전역을 폭넓은 시점으로 바라본 역사서가 몇 권 있으나, 이 책들은 지나치게 넓은 시간대를 다루고 있어 ‘전쟁 직후’의 사건들은 단 몇 장으로 개괄하는 데 그친다. 이 중대하고도 격동적인 난세를 유럽 대륙 전체 차원에서 자세히 분석한 저술은 그 어떤 언어로도 시도된 바 없다. 이 책은 미약하나마 이러한 전후사 연구 실정을 바로잡고 보충하기 위한 부분적인 시도다.
인종·민족·계급·이념·영토·종교 차이에 의한 국지적 갈등
이 책은 사소한 도발에도 폭력이 다시금 활활 타오를 수 있었던 시기에 집중하고 있다. 1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엇을 망쳤는지를 정확히 짚어주는 일을 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가를 오롯이 규명하고 완전히 인식해야만 이후에 잇따른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다. 2부에서는 대륙을 휩쓴 복수의 물결을 묘사하고, 이 현상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어떻게 조작됐는지를 밝혀낸다. 모름지기 ‘복수’는 이 책의 일관된 주제다. 전후 유럽의 분위기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복수의 논리와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3부와 4부는 이러한 복수와 다른 형태의 폭력이 걷잡을 수 없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다룬다.
3부 ‘인종청소’에서는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동유럽과 구소련에서 자행된 민족 정화를 주로 다룬다. 전후에도 범유럽적 폭력은 인종적으로 균질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강제적 인구이동과 소수민족 학살, 강제 동화 정책, 반유대주의였음을 검토하는 것이다. 가령 승전국은 유럽에 새로운 국경선을 긋고 민족 대이동을 벌였다. 이것은 미래의 적대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선의’였지만 도리어 우크라이나인, 헝가리인, 폴란드인, 슬라브인과 관련된 12가지 인종청소라는 잔인한 결과를 낳았다. 제4부 ‘내전’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폴란드, 루마니아,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서 벌어진 다양한 유형의 내전 사례를 논의한다. 또한 대독 부역 여부와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계속된 계급 갈등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이 영토 전쟁일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던 측면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발트해부터 지중해까지 ‘폭력’이라는 키워드로 유럽 각국의 내부 모순이 어떻게 분출되었는지를 꼼꼼히 서술하면서, 전후에도 오랫동안 야만성이 지속된 까닭은 연합군과 추축국 사이의 대충돌 뒤에 개별 국가·지역마다 다른 목적과 동기를 가진 인종·민족·계급·이념·영토·종교 차이에 의한 국지적 갈등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 전후 폭력은 “본질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발작이었고, 냉전의 시작과 밀접하게 맞물린 사례”라는 걸 입증한다. 그래서 이 책을 관통하는 관점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기’가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이며, 현 유럽(과 세계정세)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결정적인 ‘현대 유럽 형성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한 그것이 전후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유대인 대탈주(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건국)’ 결과로 빚어진 오늘날의 중동 전쟁, 세계 곳곳에서 다시 표출되는 유대인 혐오 정서, 코소보와 세르비아 간 일촉즉발의 분쟁 등 현재 진행형 불화의 근간에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전시와 전후 시기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또한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서로 경쟁적인 역사관이 나란히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유럽 중심에서 벗어난 ‘전 유럽적’ 관점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큰 목적 중 하나는 전후기를 다룬 대부분의 저술을 지배하는 ‘편협한’ 서구적 관점에서 탈피하는 것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전후기를 다룬 책들은 서유럽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동유럽에 대한 정보를, 심지어 동유럽권 자체에서도 쉽사리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붕괴하고 그 위성 국가들이 해체되면서 비로소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으나 그 자료들은 여전히 은밀하고 불명료한 편이며, 주로 학술서와 학술 잡지에서만 볼 수 있는 데다 대부분 원저자의 모국어로 기술되었다. 비록 폴란드, 체코 또는 헝가리의 저자들이 많은 선구적 작업을 수행했으나 폴란드어나 체코어, 헝가리어를 아는 독자들만 접근할 수 있었으며 대부분 학계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목적은 세간에 널리 퍼져 있는 전후기에 대한 여러 신화의 미궁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뚫어내는 것이다. 저자가 세부적으로 엄밀하게 조사한 많은 대학살의 진상은 흔히 전해진 것보다는 훨씬 덜 극적이었지만 매우 경악스러운 잔학 행위들은 은폐됐거나 다른 역사적 사건들에 휩쓸려 파묻히기도 했다. 그중 몇 가지는 배후에 숨겨진 진실을 명확히 밝혀내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일부의 와전된 허위를 벗겨내는 일은 가능하다.
전후 유럽사에 관한 책은, 세계대전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저작의 풍부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 들어 점점 충실해지고 있다. 대부분 ‘전후’라는 비교적 긴 기간 동안 나치즘(파시즘)과의 결별 과정, 전쟁이 남긴 부정적 유산에 대한 다양한 대처, 피해자 보상 등에 관한 기술에 주력해왔을 뿐, 이 책처럼 ‘전쟁 직후기’의 폭력과 혐오, 잔학 행위의 기술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서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한국에서도). 물론 토니 주트의 『전후 유럽』을 비롯한 몇몇 유사한 서적과 관심사가 겹치긴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기’를 두세 장으로 요약하는 게 아니라 책 한 권 분량의 주제로 논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유일무이한 연구 성과이기까지 하다.
공간적으로도, 이 책은 영국해협과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지중해 및 우랄산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고 있으며, 특히 동유럽권 국가나 옛 소비에트 연방(특히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발트 3국)의 자료를 상세히 서술한 것이 큰 미덕이다. 곧 ‘동·서·남·북 유럽(및 러시아, 이스라엘)’을 총망라한 ‘야만의 전후 유럽 잔혹사(흑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만큼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벌어진 복수, 내전, 인종청소, 강간, 강제 집단이주 문제를 ‘서구·동유럽·북유럽·남유럽(이스라엘까지)·러시아적 각도를 아우르는, 깊고 광범위한 총체성’으로 파헤친 다른 저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편협한 서유럽(이나 미국)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했기에, 전 유럽 국가의 역사 문헌 자료를 많이 채용하고, 정치 이데올로기로 인한 역사적 미스터리, 날조된 부실한 데이터 등을 타파해서 좀더 전면적이고 성찰적인 역사를 독자 앞에 펼쳐” 보여주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결실을 본 셈이다. 유달리 탈서구의 관점인 까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에 있다
지금도 중동과 동유럽에서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대전 전시와 전후에 벌어진 것과 똑같은 유형의 반인도적 폭력이 되풀이되고 있어 섬뜩하다. 이 두 개의 전쟁 또한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전후기에 근본적으로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이해할 수 있을 터다. 그래서 이 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분쟁의 화약고(가령 발칸반도, 팔레스타인, 한국과 대만 등)’에 대한 관심 그리고 새로운 동서 진영 구도(서구와 비서구의 신냉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가 일으킨 태평양 전쟁 종결 직후의 아시아 상황을 중점적으로 꼼꼼하게 다룬 ‘아시아판 전후 야만사史’도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