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역사적 상징
·한국인들의 커피는 다양한 문화적 맥락이 조화롭게 섞인 또 하나의 K컬처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는 왜 한국인들이 커피를 즐기게 됐는지를 문화사적으로 톺아본다. 시장 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405잔에 이른다. 전 세계 평균 152잔의 2.6배에 달하는 수치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소비량이고 아시아에서는 1위다. 무엇이 한국을 커피의 나라로 만들었을까? 한국인들이 특별히 커피맛을 좋아해서일까? 커피맛 때문이라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의 커피 산지보다 한국인들이 커피를 더 소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문화적 맥락을 봐야 한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커피는 개항과 함께 조선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고종을 비롯해 상류층과 외국인들이 최신 문물인 커피를 즐겼다. 당시 커피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접하기는 힘든 물품이었다. 그러나 발전된 서양 문물의 상징으로 눈도장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은 커피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서양 문물이 보급되고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커피는 가장 힙한 문화의 상징이 된다. 당시 조선호텔은 월드스타 최승희를 커피숍 모델로 썼다. 유행에 민감한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은 커피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도 커피를 쉽게 즐기기는 어려웠지만 얼리어뎁터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스커피를 즐겨 마시며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는 한국인들의 선구자가 됐다. 찬물을 즐겨 마시는 문화가 외래 음료인 커피와 결합하여 벌써부터 한국식으로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상류층 외에도 커피를 일찍 접한 계층이 있었다. 하와이 커피 농장을 이민을 떠난 이들이다. 그들은 커피 농장에서 일하며 어쩔 수 없이 커피를 마셔야 했다. 물갈이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커피를 끊여 먹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커피는 ‘쓴 물’이었다. 저자는 당시 커피를 서양 문물의 최신 유행으로 즐긴 이들과 이민자로서 ‘쓴 물’을 마셔야만 했던 이들을 언급하며 초창기 한국인들이 계층에 따라 커피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대비한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역사적 질곡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커피는 점차 대중화된다. 여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미군이었다. 군정 시기와 한국 전쟁 때 미군의 전 투식량 중에는 인스턴트커피가 들어 있었다. 이 커피가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고 맛볼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다방이 증가했고, 도시를 배회하는 갈 곳 없는 이들이 다방으로 모여들었다. 커피를 파는 다방은 일종의 사랑방이 됐다. 서양의 카페처럼 공간과 시간을 파는 형태가 일반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서구의 카페와는 맥락이 달랐다. 지역 공동체의 주민들이 회합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여러 지역과 출신들이 섞인 일종의 대합실 같은 곳이 다방이었다. 전쟁과 근대화를 거치면서 뿌리를 잃은 사람들은 다방에서 모였고, 미래를 모색했다.
1970년대부터 한국의 커피 산업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주역은 동서식품이었다. 커피는 해방 이후부터 군사정권 시기까지 계속해서 정부가 가격을 관리하려는 품목이었다. 커피는 수입산이었고 외화가 유출되는 품목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 정권은 커피 판매를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장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결국 해법은 규제를 풀고 커피를 시장에 더 투명하게 공급하는 일이었다. 그 일을 맡은 회사가 동서식품이었다.
동서식품의 인스턴트커피와 믹스 커피는 한국 사회를 바꾼 제품이 됐다. 다방에서 마시던 커피를 집과 회사를 비롯한 일터에서도 마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믹스 커피와 종이컵, 뜨거운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진정한 커피 대중화는 동서식품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의 문턱을 낮추고 쉽고 저렴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면서 커피에 대한 벽이 사라진 것이다. 후일 한국이 커피의 나라가 된 데에는 동서식품으로 인한 커피의 대중화를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커피 자판기가 더해지면서 커피는 이제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음료가 됐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커피 프랜차이즈가 생기고 스타벅스가 상륙하면서 한국은 명실공히 커피의 나라가 됐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한국에 첫 매장을 낸 스타벅스코리아는 이제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다. 스타벅스는 공간을 판다는 개념으로 고객을 끌어모았고, 특색 있는 마케팅으로 스타벅스 사용자들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커피만이 아닌 커피 문화를 파는 업체가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스타벅스가 들어선 건물의 가치가 올라갈 정도다. 이제 커피 산업은 커피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커피 문화 그 자체를 파는 산업이 됐다. 커피 도시가 된 강릉도 마찬가지다. 화랑이 차를 마신 곳이라는 전설에서 시작해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자판기가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강릉은 커피 도시가 됐다. 이는 커피 산업이 문화와 결속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국의 커피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콘텐츠다.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는 한국에서 커피가 한국인들에게 어떤 문화적 맥락으로 받아들여졌는지,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는 곧 한국인 정체성과 그 문화를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커피가 들어온 지 140년 남짓한 역사 동안 한국인은 커피를 통해 세계를 보고, 위안을 얻기도 했으며, 선망의 대상에서 취향의 일부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커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커피는 커피가 처음 들어왔던 그 시절의 커피와는 다르다. 한국인이 즐기는 커피는 K컬처처럼 다양한 맥락이 복합적으로, 그러면서도 조화롭게 섞인 그 무엇인가다. 그렇기에 한국의 커피는 한국인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의식의 일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