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났지만, 빨치산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내내 우리 아버지를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1930년 생으로 이 책의 저자보다 5살이 많으시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으로 참전했다. 아버지가 반공주의자여서 국군이 된 것도 아니다. 전쟁이 나고 어쩌다 국군이 되어 인민군과 싸우게 되었다. 그 전쟁 속에서 아버지는 중국군이 쏜 총에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아버지도 이 책의 저자처럼 소작농이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20살의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징집이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왜 인민군과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싸웠을 것이다. 당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가 영문도 모른 채 전쟁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각자 열심히 싸웠다. 국군도 인민군도 열심히 싸웠다. 그 중에 일부는 전쟁 중에 전사했고, 일부는 살아남았다.
김대중 정부 이후 아버지는 6.25 참전유공자가 되어 적은 금액이지만 30여만 원의 참전 수당을 받고 있다.
북한에서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북한식 표현에 의하면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에 참전해서 희생되거나 생존해 있는 인민군들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남쪽에서 빨갱이로 몰려 토벌에 대상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거나 살아서 포로가 되어 30여 년 이상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빨치산들의 고귀한 희생은 어디에서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한국전쟁의 정전과 함께 빨치산은 북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내 줬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1년 뒤까지도 지리산, 백운산 등지에서의 빨치산 투쟁은 계속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영승이 체포된 것도 휴전 이후인 1954년 2월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빨치산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휴전 이후 빨치산 투쟁은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었다.
휴전협정에서 빨치산들의 처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북쪽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휴전협정은 1년 이상 끌었는데 남쪽에 고립되어 외롭게 싸우고 있는 빨치산들의 안전한 퇴로를 반드시 끌어냈어야 했다. 휴전 이후 토벌대에게 무참하게 토벌당한 빨치산들의 최후를 생각할 때마다 더욱 마음이 아프다.
이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조선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청춘도 목숨도 바쳐 싸웠다. 그런데 포로가 된 이후에는 대한민국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들의 조국은 조선인데 대한민국을 배신했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된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한국전쟁이 내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적으로 정치사상이 다르다고 30년 이상 옥살이를 시킨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뒤늦게나마 비전향 상태로 출옥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비록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서 대한민국의 법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지만, 이들이 공산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키며 투쟁했던 과정에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벌써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4년 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돌아왔다.
2025년에는 북한과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고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오기를 기원한다. 북미 평화협정과 수교는 통일조국으로 가는 첫단추이다. 그 길이 바로 빨치산 전사들의 염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정치 종교의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6.25 참전용사 나의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처럼 조국해방전쟁에 한목숨 바치며 싸운 빨치산 전사들을 존경한다.
이 책을 통해 이들 모두의 삶과 투쟁이 존중받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