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외 다수 저자)
차무진 작가는 저에게 ‘낭만’이라는 한 단어로 기억됩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저에게는 대단히 유일하며 독보적인 낭만가입니다. 그는 소설가이면서 클래식 애호가이고, 두 아들을 사랑하는 아빠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소설가도 많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좋은 아빠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셋의 교집합으로 이루어진 사람은 제가 알기로는 차무진 작가뿐입니다. 이 책은 그런 사람이 쓴 낭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클래식이라고는 고등학생 시절 음악 시간에 들어본 게 전부인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클래식을 보러 가자고, 자신이 표까지 다 준비해 두었다고 하는데도 몇 차례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고루한 음악을 비싼 돈 주고 숨죽인 채 몇 시간이나 들어야 한다는 게 싫었습니다. 그러나 차무진 작가가 말하는 클래식과 자신의 삶의 이야기는 고루한 대신 자극적이었고, 비싼 대신 고작 책 한 권 가격을 지불하는 게 전부였고, 숨죽여 오래 듣는 대신 종종 감탄하며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별이 직감되는 상대가 있습니다. (...) 조금은 재미있어집니다. 정신없이 빠져드는 연애가 아닌, ‘한 번 지켜볼까. 어떻게 사랑이 진행되는지.’라는 기대가 살짝 스며들거든요.” 과연, 낭만가란 그런 것입니다. 이별이 직감되어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떻게 진행될지 스며드는 기대를 붙잡는 사람. 이런 상황이 되어 본 일은 없지만 이런 태도를 가져 본 일이 없는 저로서는 차무진이라는 사람의 삶을 대하는 방식도 태도도 감탄스럽습니다. 그러고 보면 클래식이라는 것도 저에게는 이별이 직감되는 대상이지만 이렇게 이 책과 만나게 되어 뭐라도 좀 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됩니다. 적당한 기대가 스며드는 걸 보니, 저도 차무진 작가의 낭만에 동참하는 듯합니다. 이 책에는 제가 한 번 등장합니다. 그날 차무진 작가와 저는 종로의 전집에서 만나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왜 그랬는지 그날은 둘이 노래방에 갔고, 그날 그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쯤되니 ‘그놈의 낭만’이라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도 하지만, 그가 부른 노래가 실제로 그랬다는 건 그의 글과 태도의 일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 굳이 부연해 둡니다. 그가 언제까지고 소설가로, 클래식 애호가로, 좋은 아빠로, 그리고 유일하며 독보적인 낭만가로 남아 있길 바랍니다. 본디 낭만이란 변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법이니, 그는 언제든 그러한 사람으로 제 곁에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