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요’로 시작되어 ‘좋아요’로 끝나는 하루
우리가 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 SNS를 열어보는 일이다. 밤새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친구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확인한다. 팔로하는 친구의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와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좋아요’를 눌러준다. 그리고 내 게시글에 ‘좋아요’가 얼마나 달렸는지도 확인한다. 문제는 이 ‘좋아요’ 숫자가 그날 하루의 기분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남에게 주는 ‘좋아요’이든 남에게 받는 ‘좋아요’이든 이러한 지표에 중독되어 있다. 마치 ‘엄지척’ 말고 딱히 쓸모를 몰랐던 엄지의 혁신적인 기능(‘좋아요’를 누르는 것)을 발견한 듯이 말이다. 검지로 누르면 맛이 나지 않을 정도로 ‘좋아요’를 누르는 엄지에는 인정 욕구가 숨어 있다.
우리는 이제 어떤 행위, 특히 성과를 냈을 때 실시간으로 칭찬받고 인정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의 10대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조차 ‘좋아요’를 받았고, 삶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숫자 지표로 응원받기도 하고 칭찬받았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는 이렇게 좋은 ‘좋아요’ 숫자를 숨기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남의 ‘좋아요’는 물론 내가 받은 ‘좋아요’ 숫자도 숨길 수 있다. 왜일까?
소셜 미디어 관련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좋아요’를 받으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존감은 자기긍정감이다. 그래서 자기긍정감을 점점 더 느끼려다 보니 중독성을 띤다. 하나의 성과를 통해 자기긍정감을 느끼고 났을 때, 이후에 또다시 자기긍정감을 느끼려면 그보다는 조금 더 큰 성과를 올려야 한다.
“SNS에서 1천 개의 ‘좋아요’를 받고 나면 나중에는 3천 개의 ‘좋아요’를 받고 싶어집니다. 한 번 칭찬받으면 더 많은 칭찬을 받고 싶어지지요. 인지적인 뇌가 남과 비교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욕망 때문에 언제나 불만족스러운 것입니다.”(53쪽) 이러한 중독성이 결국에는 정신적 피폐를 가져오는 것을 막고자 ‘좋아요’ 숨김 기능을 만든 것이다.
■ 죽을 때까지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면 살 수 있을까?
내과 의사를 그만두고 스포츠 닥터로 전향한 쓰지 슈이치는 이러한 자기긍정감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안데르탈인에서 오늘날까지 문명을 발달시켜온 호모사피엔스는 인지적인 뇌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인지적인 뇌가 주로 움직이는 것은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에서 3~4단계인 사회적 욕구와 존경의 욕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음으로써 자기긍정감을 얻으려 애쓴다. 말 그대로 ‘이러다 죽겠다’라고 고통스러워하면서까지 말이다. 존경의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끊임없이 타인의 존경을 바라고 채우려 한다.
1억을 모으고 나면 10억을 바라보게 되고, 10억 가지면 100억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워 죽겠다. 학급에서 1등을 하고 나면 다음 목표는 전교 1등이 되고, 더 나아가 전국 1등, 만점이라는 완벽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삶은 조금도 즐길 수 없고 인생에는 성과를 측정한 지표만 남게 된다. 문제는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의 행복감이 얼마나 오래가느냐이다.
저자도 공부와 스포츠, 일 등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실력이 뛰어난 의사는 항상 있었고, 죽어가는 모든 환자들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긍정감은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후로 내과 의사를 그만두고 성과와 승부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운동선수들의 자기존재감을 높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 승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모두 실패한 사람들이며 불행한 것일까?
승부를 다투는 스포츠 세계에서 무엇보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에 따르면 자기긍정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1명의 승자뿐이다. 끊임없이 채워야만 하는 자기긍정감을 내려놓고 자기존재감을 기른다면 비록 지더라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삶의 가치와 행복을 느끼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거기에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 ‘내 삶이 좋아졌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슬램덩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가 있다. ‘왼손은 거들 뿐’. 오른손 스냅을 이용해 슛을 날릴 때, 왼손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뜻이다. 뇌에서도 주된 역할은 인지적인 뇌가 담당한다. 성과 지향적인 사회에서 자기긍정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비인지적인 뇌를 활용해서 나만의 개성과 자기존재감이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전국에서 보험 영업 1위를 하는 세일즈맨이 있다. 그는 ‘언제나 실적이 좋아야 한다’, ‘영업부에서 1등을 해야 한다’는 자기긍정감의 굴레에 빠져 최고의 실적을 올리는데도 항상 초조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하지만 자기존재감을 기르고 나서 비록 전국 1등은 아니지만 적당히 좋은 성적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
시험에서 백 점을 맞는 것보다, 프로젝트 성공으로 연봉이 오르는 것보다, 영업 실적 전국 1위를 달성하는 것보다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 이제는 그것을 찾아야 할 때이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에서 맨 꼭대기에 있는 ‘자아실현 욕구’이다. 자아실현 욕구는 절대 외적인 성과로는 충족할 수 있다. 나 자신이라는 존재에 만족할 때 비로소 채워진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하루 종일 모래 장난을 하고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고 집에 돌아와서 뿌듯하게 잠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흙장난은 어떤 성과도 없는 그저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성취를 이룬 것보다 더 행복하고 흡족한 기분을 느꼈다.
저자는 자기존재감을 느끼면 일도 얼마든지 즐기면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내 안에 있는 자기존재감을 느끼기만 하면 현재 내 모습도 충분히 괜찮고, 내 삶도 남부럽지 않다고 말이다.
남들의 일상에 ‘좋아요’를 누르던 하루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진정으로 만족감을 느끼면서 ‘좋아요’ 하나를 꾹 눌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