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 - 이은화 지음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

저자 : 이은화

발행일 : 2025년 01월 17일 출간

분류 : 문학 > 한국시 > 현대시 KDC : 문학(810)

정가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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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출판사연락처
02-572-9898
출판사 주소
쪽수
144
ISBN
9791192651323
크기
124 * 198 * 14 mm / 316 g

도서분류

문학 > 한국시 > 현대시

도서소개

집시 여인의 14년 만의 외출 2010년 《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은화 시인의 첫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시인수첩 시인선 92번으로 출간되었다. 삶의 거친 파랑(波浪)을 견디며 무려 14년의 묵언을 지켜온 끝에 터진, 시인의 섬세하고도 정갈한 문장들에는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여 순백의 ‘나’에 이르기 위한 성찰이 오롯이 담겨 있다. 특히, 시인은 “우리의 삶이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리오네트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계에 대한 주제를 담았”다고 고백하는데, 그러나 그는 현대인들의 삶이 그 근원적 실존에만 머물지 않고 있음 또한 동시에 포착한다. 중력을 거부하던 ‘조르바’처럼 시인도 우리의 삶을 “생존을 위해 아웃사이더로 밀려나길 거부하는 춤과 노래로 치환”한다고 과감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되짚어 보면 모든 시간은 열려 있다”(시인의 말)는 문장에 선명히 각인된 놀라운 확장성은 절망은 항상 희망으로 구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소개

저자 이은화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10년 《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cactus6812@hanmail.net

목차

시인의 말 1부 | 누구든 될 수 있어요 한나·13 기린의 식사법·14 연설·16 히죽히죽·18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20 스크린·22 얼룩말 모니터링·24 해시시 클럽 혹은 턴테이블 위의 지중해·25 돼지 케이크·26 서서 달리는 관(棺)·27 오렌지 비타민·28 토끼와 거북이의 거북이·30 눈물의 정곡·32 홍씨와 탁씨·34 2부 | 유리가 몸 밖으로 돋아난다 바닥·39 헛, 아름다움·40 베이직·42 Anne, 홀로 쓸쓸할 때·44 발굴하다·46 꿈틀,·48 미미·50 올레! 올레!·52 칸나·54 수미산 똥바다·56 우울의 온실·58 뱀딸기·59 국수(掬水)·60 무궁화 인쇄소·62 유리달·64 3부 | 붉은 달은 지지 않는다 복사뼈에서 물뱀이 미끄러진다·69 달은 어떻게 죽는가·70 향·71 기다리는 중입니다·72 폭죽·73 나비극장·74 파란(破卵)·76 네 이웃이 잠들지 못하는 밤·77 사과꽃이 피었습니다·78 고도의 무늬·80 살모사와 국화꽃·82 푸른 염소의 방·83 가훈·84 달이 뜨고 지지 않았다·85 4부 | 당신의 누군가가 아니라서 당신을 만지고 싶은 낮입니다·89 첫,·90 길을 잃었습니까·92 사크로몬테·94 엄지 젖꼭지가 따뜻하다·96 낮을 읽는 밤·97 하루살이·98 튤립을 외면하고·99 레몬은 시지 않다·100 사랑·102 제비원 휴게소·103 살구꽃 우물·104 오만 볼트의 불안·106 오후의 애인·108 의자의 계절·110 [시집 해설] 김진수(문학평론가) “꽃과 나비의 춤, 또는 집시의 노래”

서평

시인의 목소리를 천천히 따라가 보자. 우리가 죽어 썩은 뒤에도 썩지 않을 가공된 맛과 냄새들이 입에 쓴 명약처럼 광장을 누비는 중이다 바다로 갔다는 사람들은 있지만 돌아온 사람은 없는 광장 노인들이 내일 날씨를 걱정하는 중이다 - 「연설」 부분 광장을 걷던 시인은, 문득 자신의 몸에 “가공된 맛과 냄새”가 묻어 있다는 기분이 든다. 우리가 죽어 썩은 뒤에서 절대 썩지 않을 것들이다. 입에 쓴 명약으로 과포장된 이 ‘맛’과 ‘냄새’는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현실에 빗장을 채우고 미래에 대한 안도감을 선사하지만, 우리는 무의식중에도 항상 노인들처럼 내일 날씨를 걱정하고 있다. 여기서 ‘맛’과 ‘냄새’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불안’이 압축된 중력인 동시에 생존에 내몰린 현대인들의 생활이 아닐까. 하지만 시인이 진단한 것처럼 그 ‘불안’은 이미 우리를 스스로 타자로 만들어 버렸다-“수천 개의 눈에 갇힌 나를 왈칵 토해내고 싶은데 어쩌지 타인의 삶이 살갗 같아서 벗겨낼 수 없어 내일도 우리는 박수 소리를 맞으며 춤을 팔고 있을까 낮게 속삭이며 레게 머리 소녀는 울먹입니다 // 타인의 얼굴로 타인과 밥을 먹고 타인과 키스를 하지 빛 속에 갇혀 타인의 춤을 추는 우리, 흥얼대는 소년에 채찍이 감깁니다”(「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라는 문장을 보자. ‘나’는 나로서 존재하기는커녕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살갗’으로 믿고 복종할 뿐이다. 시인은 “이곳은 불빛이 꺼지지 않는 회색 방 / 퍼즐 놀이는 언제쯤 끝이 날까요 / 발목을 꺾는 펜 앞에서 타인의 춤을 출 수는 없잖아요 / 식판에는 알약이 수북이 쌓이겠지요 나를 먹어 치울 / 약들이 스멀스멀, 그런데 어떡하죠 / 히죽히죽 자꾸 웃음이 나와요”(「히죽히죽」)라며 고백하지만 이 문신(文身)은 가혹하게도 점점 더 깊이 파고든다.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모든 시간은 열려 있다. 그 시간은 길고 느리기도 하며 순간 멈추고 반전될 때도 있다. 시인이 포착한 시간은 후자다. 마치 선문답과도 같은 깨달음이다. ‘정지의 변증법’(벤야민)이라 일컬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하다. 요컨대, “객석을 봐 당신은 누구의 마리오네트입니까”(「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라는 물음에는 이미 마리오네트의 탈을 부술 힘이 깃들어 있다. 노동은 찢어진 날갯짓, 날개 해지도록 늪을 건너 유채꽃 핀 그곳에 가닿는 거야. 더는 입술에 달빛 적시지 않는 곳으로. 무거운 머리로 왈츠를 출 수 없던 날갯짓 이제 멈추는 거야. - 「스크린」 부분 중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멈춰야 한다.’ “수렁이라도, 피는 꽃은 아름다”(「스크린」)운 법이 아닌가. 사정이 그러하니 노동이라는 ‘찢어진 날갯짓’을 감싸 안으며 해가 지도록 늪을 건너 유채꽃 핀 ‘그곳’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잠 속에서 인어를 낚는 당신, 짜릿한 감각들이 봄꽃 피우는 초속 5km를 지나 꽃향이 여름 볕에 타는 순간을 지나 입맛 다시는, 갈증의 환각들이 살사를 추는 지중해 혀가 당신의 입에서 빠져나온다 인어의 꼬리를 따라”(「해시시 클럽 혹은 턴테이블 위의 지중해」) 그는 빠르게 확장한다. 타인은 비로소 ‘나’의 시야에 들어오고, ‘나’를 온전히 투사한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 서로의 오드아이를 들여다보는 동안 / 묻어둔 물음을 꺼내 뜨겁게 되묻는 우리는 / 누구일까 / 중얼대며 사람들 속으로 파고”(「헛, 아름다움」)든다는 말이다. 이것이 시인이 춤과 노래라는 순례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나’는 나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워진다. 안개를 놓치면 우리는 다시 이 자리 밀고 당기는 손끝에서 돌고 도는 세상 턴, 턴, 턴 아닌 삶이 어디 있겠어요 립스틱 색을 바꾸고 베이직을 밟아요 곁에 남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인 길, 함께 건반을 밟아요 - 「베이직」 부분 ◨ 다음은 시집에 관하여 시인과 나눈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Q] 주제와 이야기의 방향은?  [A] 저는 우리의 삶이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리오네트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계에 대한 주제를 담았습니다. 이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짧은 인터뷰를 준비하는 이 순간 어휘와 조사 하나까지도 넣을까 뺄까, 선택하듯 말이죠. 이어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노력할수록 상처받는 현대인들의 모순적 삶의 제시와 부조리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안타까운 정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구심점은 생존을 위해 아웃사이더로 밀려나길 거부하는 춤과 노래로 치환됩니다. 이는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Q] 이번 시집의 특징은?  [A] 4부로 묶인 한 권의 시편들은 사계절을 수놓은 병풍처럼 계절 옮기듯 서로 결이 다른 편들로 배치했습니다. 1부 현실이 이상을 뛰어넘지 못하는 현대인의 갈등과 2부 집시의 춤과 노래라는 환유를 통해 타자와 합일 할 수 없는 슬픔 또는 존재론적 물음과 갈망 3부 과거 회귀로서의 대상이 부재한 상실감 4부 탐미적 에로티시즘의 이미지 변주를 통한 자기연민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재적 관점으로 추상적 관념의 구체화 또는 제재를 환유로 치환하는 작품들 그리고 날카로운 감각적 묘사가 도드라진 편들이 다수를 이룹니다. 특히 경쟁 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불안을 구체화한 시편들은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과 창의적 삶을 갈구하는 병치를 통해 타자의 소리를 대변하는 성격을 지닙니다. [Q] 나는 어떤 시인인가?  [A] 그동안 저는 시인보다는 생활인에 가까웠습니다. ‘생활 속 나는 어떤 시인일까’라는 질문보다 ‘나는 어떤 삶을 희망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컸습니다. ‘나는 어떤 시인인가?’ 본질적 질문에 슬픔이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깊은 내면을 마주하면 시는 제게 아픔과 자유라는 중의적 의미였습니다. 시를 너무 사랑해 오히려 시가 어렵고 낯설 때가 많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 편해지는 역설적 의미랄까요. 지금은 시를 ‘어떤, 무엇이다’라고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삶의 파랑 속 저를 자유롭게 하는 유일함은 시였습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시 세계관에 대한 방향은 자연과 사물 그리고 사람들과 제 내면의 소리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제 심연의 물고기들이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유영할 수 있을 테니까요. 굳이 이 질문에 답을 찾자면 춤과 음악 그리고 시를 사랑하는 자유인이라는 의미가 어울릴 듯합니다. -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 시집 해설 들여다보기 “꽃과 나비의 춤, 또는 집시의 노래” 김진수 문학평론가 ‘집시(Gypsy)’ 이미지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2010년 등단 이후 만 14년 만에 선보이는 이은화의 첫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는 ‘집시의 노래’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성싶다.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포함한다면, 사실상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는 유랑과 방랑과 여행의 시집이긴 하다. 애초에는 인도-아리아인의 ‘유랑민’을 일컫던 이 용어는 우리에게 곧장 ‘보헤미안(Bohemian)’이나 ‘노마드(Nomade)’라는 단어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빨강’이나 ‘피’ 또는 ‘튤립’이나 ‘칸나’로 상징되는 시집의 열정적이고도 활력적인 전체적 분위기는, 물론 ‘자유로운 집시 여인’이라는 현대적인 감각과 관능의 이미지의 산물일 테다. 시인은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아래의 시에서와 같이 고통의 춤과 슬픔의 노래로 듣는다. 그러니, “집시 여자 종려나무 잎사귀”(「사크로몬테」)라는 이미지가 단순히 시인의 이국적인 취향 때문에 시집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물론 이외에도 선인장, 아랍 남자, 레게 머리, 은발, 기린, 흰 피부에 금빛 머리칼을 가진 한나, 베이직, 라틴 음악 등의 이미지가 갖는 이국적인 풍경과 색채가 범람하긴 하지만 말이다. 깐테 혼도 올레 빨간 치맛자락 펄럭 접히는 소리 깐테 혼도! 무희의 박수 소리에 맞춰 안개를 들이마시며 올레를 외친다 올레! 올레! 춤추다 혼절하는 바다 갑판 불빛들은 안개를 태우지 못한다 눈빛들이 손금을 의심하는 순간 무희가 박자를 놓친다 빨간 회오리 치맛자락 속으로 타들어 가는 경쾌한 구두 소리와 박수 소리 바다에서 돛도 잃고 닻도 잃은 채 외치는 올레! 올레! 관념어에 매인 나침반 바늘이 태양을 찾아 헛바퀴를 돈다 올레! 올레! 사람들이 안개의 맥을 짚는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뒤를 보는 순간 물에 빠졌다는 전언 깐테의 태양, 물 위의 플라멩코 - 『올레! 올레!』 전문 춤은 격렬하고 노래는 고통스럽다! “빨간 회오리 치맛자락” 날리며 플라멩코 춤을 추는 무희에게서 춤과 노래는 분리되지 않고 ‘격렬한 고통’을 낳는다. “빨간 치맛자락 펄럭 접히는 소리”와 ‘구두 소리와 박수 소리’가 바로 그녀의 노래, 즉 “춤추다 혼절하는” ‘깐테 혼도’이기 때문이다. 춤과 노래가 일체화된 무희의 격렬한 동작과 더불어 ‘바다’의 “안개를 들이마시며 올레를 외”치지만, “갑판 불빛들은 안개를 태우지 못한다”. 사실상 그 어떤 불빛도 안개를 태울 수는 없다. 저 ‘올레’는 “바다에서 돛도 잃고 닻도 잃은 채 외치는” 소리여서 하나의 ‘관념어’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관념어에 매인 나침반 바늘이 태양을 찾아 헛바퀴를 돈다”. 그러니 춤은 한층 더 격렬해지고 노래는 더욱 심오하고 고통스러워질 뿐이겠다. 춤추다 혼절하는 ‘깐테 혼도’에 이를 때까지 말이다. 남는 것은 “깐테의 태양/물 위의 플라멩코”일 뿐. 플라멩코는 그렇게 아픔과 슬픔의 표현이 된다. 이러한 격렬한 감정의 표현은, 「당신을 만지고 싶은 낮입니다」에서부터 “당신을 삼킨 꽃들이 피어 있는 바다”라거나 “속옷에 사향을 숨긴 내가 총을 겨눕니다” 혹은 “총알이 관통한 심장” 같은 어사들을 통해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는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는 내게 ‘집시의 춤과 노래’라는 환유를 통해 타자와 일치를 이룰 수 없는 슬픔을, 곧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상처와 고통을 노래하고 있는 시집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시집의 도처에서 “유리가 몸 밖으로 아프게 돋아난다”. 거기에서 ‘혼절’에 이를 듯한 아픔과 슬픔은, 태양처럼 격렬하게 타오르는 듯한 사랑과 “총알이 관통한 심장”이라는 죽음 같은 이별이 불러온 고통의 상처들이겠다. 그래서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연시’나 ‘이별시’의 형식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우리의 사이는, “미래를 약속한 당신이/타인이 되고/또 다른 타인이 당신이 되는/우리”(「튤립을 외면하고」)의 관계는 아프고 슬프다. 합치될 수 없는 타자와의 관계는 절망과 절규를 불러올 뿐이다. 그 절망과 절규가 바로 ‘집시의 노래’이자 ‘깐테 혼도’일 것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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