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날갯짓이 나를 여기로 데려와줬다.”
인생은 정말 예상할 수 없다, 기쁨도 슬픔도
우리 삶에 우연과 필연의 총량은 얼마큼일까.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연과 필연의 ‘케미’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몇 가지 꼽자면, ‘이런 이야기도 좋아할까’ 반신반의하며 만들었던 청소일에 관한 독립출판물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정식 출간으로 이어졌다. 좋아서 시작한 그림 일은 오래 지속하고 싶은 직업이자 포기할 수 없는 미래가 되었다.
그 ‘우연한’ 출발들은 새롭고 넓은 세계로 그를 데려다주었다. 청소부에서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강연가, 강사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든 것이 마치 ‘필연적’으로 예고된 듯 그의 일상에 차곡차곡 안착해갔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들 하던가!) 하지만 반복되는 ‘현생’을 살다 보면 고단함과 자책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작가는 첫 책 이후 몇 권 더 책을 냈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이 처음만 못하다고 느낀다. 그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한 작업물이 적지 않으나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았다고 털어놓는다. 호기롭게 지은 ‘코피루왁’이라는 활동명은 그의 가치관과 충돌을 겪게 되고, 청소일을 하며 느끼는 시선의 무게와 직업에 대한 사회적 통념도 크게 나아진 게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젠 무엇 하나 쉽게 그만둘 수 없다. 하나둘 소중한 것이 늘어가서일까. ‘삶의 많은 것들이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일까. 잘 알지 못해서 더 씩씩했던 데뷔 시절 에너지가 사라지고 남은 건, 오늘의 막막함과 내일의 두려움이 커져가는 현실뿐. 10년 차 청소부이자 6년 차 작가인 김가지는 바로 이 현실로부터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지금의 내 현실이 미래와 닿을 연결고리가 아니면 어쩌지?”
괜찮아, 계속할 마음은 충분해,
청소일 그다음의 또 다른 세상을 그려갈 준비
1장 ‘진로 고민은 영원히’는 ‘직업’에 관한 속 깊은 이야기다. 진로와 직업에 대한 고민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숙제다. 나에게 잘 맞는 일이 뭘까?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의 간극은 얼마큼일까? 지금의 선택에 후회는 없을까? “사회 속의 나라는 사람이 ‘대접’을 받는지 ‘취급’을 받는지 결정되고 자아상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직업이기에, 사람들은 직업을 정할 때 다양한 조건을 염두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청소일을 선택한 작가는 “아이러니하게 주목받는” 일이 많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기도 한다. 과거 계급사회가 존재했을 때는 존재 자체로 귀천이 정해졌지만, 요즘은 ‘직업’ 자체가 계급처럼 여겨지기 때문일까?
일과 삶에 관한 작가의 생각은 2장 ‘계속하고 있습니다, 청소일’에서 풍성히 이어진다. 청소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희로애락은 소소하고 다채롭다. 모두의 직업 세계가 그러하듯 웃을 일이 있으면 피곤한 일도 있고, 못하겠다 싶다가도 그래도 또 이 정도면 괜찮은 듯하다. 성향이 닮은 사람도 만나고 전혀 다른 사람도 만난다. 우리는 사회적 기준에 맞춘 삶만이 정답이 아님을 모르지 않는다. 작가는 “내 기준에 맞는 선택과 책임”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유연히 실천한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지지하게 되니까. 판단의 기준과 잣대가 나의 ‘바깥’에 있으면 내가 나를 충족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므로 3장 ‘미래는 불안을 닮아서’에서는 책을 내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이후를 톺아보며, 다시 마음을 다지는 시간으로 나아간다. 데뷔 6년 차가 된 작가는 “청소일을 말하지 않는 나는 작가로서 여전히 유효할까?” 물음표를 띄운다. 책을 내기 전까지 “매우 사적인” 일상을 지냈지만 책을 낸 뒤 “하나의 사례로, 인생의 지표로” 많은 사람에게 다가갔고 다양한 일을 하는 N잡러로 살고 있다. 청소일 그다음의 세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몸과 마음으로 직접 부딪히며 체득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작가는 우리 삶에 필요한 용기가 멀리 있지 않음을 안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지나온 날들과 지금 그리고 나아갈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만날 수 있다. 어른이 되는 먼 미래를 꿈꾸던 10대의 예지,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았던 20대의 예지, 지금의 나를 응원하는 30대의 예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미래의 예지… 운명의 수레바퀴가 타래처럼 엮어내는 이 멋진 삶의 모험담에 진한 공감과 위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