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구생태계, 옛이야기에서 그 해법을 찾다
아시아 설화에서 발견하는 생태의식, 생태적 삶과 공생의 미학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인구팽창, 식량부족, 환경오염과 함께 지진·해일·홍수·산불·집중호우·폭염 등의 기후위기,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의 전 지구적 확산으로 심각한 생태계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지구생태계 위기에 대응하는 시도로서 다양한 생태학적 진단과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문학 분야에서는 생태문학과 문학생태학의 방향에서 연구가 촉진되고 있으며, 연관하여 환경문학, 재난문학, 질병문학, 포스트휴먼 등의 개념도 연구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 생태학이 과학적 연구 방법을 통해 생태계의 관계 및 유지에 관해 연구하듯, 생태문학 연구도 이에 걸맞은 문제의식 및 현재의 생태계에 관한 실천적 연구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이 책은 한·중·일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각국 설화에서의 생태적 제재를 연구 주제로, 생태설화를 발굴하여 소개하고 서사를 비교분석하며, 작품에 담긴 생태의식을 분석하고 환경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한다. 아시아 생태설화의 읽기와 연구를 통해 재난과 인간존중정신, 재난과 생태적 삶, 생태계 회복의 문제, 생명존중정신,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 문제, 소수자와 이주민들의 이주와 적응의 문제 등의 개념과 현재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현재적 의미로서의 설화,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서의 설화
설화는 한 나라와 민족, 또는 부족의 기층문화, 정서, 가치관, 생활사, 민속 등을 보여주는 자산이다. 설화는 그 자체로 재미있는 읽을거리이자, 각 나라와 민족의 가장 소박한 문화와 중요한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이를 잘 읽어낸다면, 전근대 시기 아시아인의 문화와 생활정서를 편견 없이 ‘상호이해’하고 ‘교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의 생태설화를 통해 인간의 탐욕과 악행이 지속된다면 자연과 공동체가 멸망한다는 교훈, 때로는 가장 값비싼 것으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자연과 공동체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경고를 얻을 수 있다. 또한 감염병의 치명적 피해와 그로 인한 격리·배제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며 감성적으로 견고해지고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옛이야기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과 생태적 삶, 공생의 정신, 화해와 소통, 평화의 정신이 얼마나 값진가에 대해 공감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떻게 연대해야 할 것인지 생각할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시아 문학 연구자들은 아시아인의 삶과 가치관, 환경문제를 잘 드러내주는 각국의 설화, 옛이야기들을 조사해 연구·편집하고, 자국어 및 영어로 번역해 연구자 및 독자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환경·생태를 제재로 한 각국의 설화·고전 텍스트를 활용해 아시아인의 상호소통 및 평화, 자연파괴 및 재해 예방에 기여할 현실적 방식을 찾아야 한다.
교육부터 사회적 담론 제시까지
아시아 생태설화의 실용적 활용 방안
아시아 생태설화의 다양한 이야기와 생태의식은 여러 측면에서 활용할 수 있다. 첫째, 독서·교육 면에서 가장 유용할 것이다. 최근 전래동화 또는 옛이야기는 대학교육, 유아교육 및 초등교육, 어린이 독서지도, 외국인 및 다문화가정 여성·자녀의 한국어·한국문화교육 등 다양한 교육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아시아 생태설화는 한국을 비롯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상호문화주의 및 문화소통의 관점에 기반해 각양의 교육 현장에서 생태문화자산으로 유용할 것이다.
둘째, 아시아 생태설화는 자연·생태계 보전에 관한 문화담론과 사회문화정책을 논의할 때 유용하다. 우리는 생태문학을 기반으로 한 생명존중정신, 인간과 자연의 공생담론, 인류세담론, 종간공동체론, 면역공동체론,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등의 문화담론이 시민들을 위한 사회문화정책 수립의 이론적 토대로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찰할 수 있다. 또한 생태설화를 바탕으로 감염병 발생의 생태적 근원인 열대우림 파괴와 야생동물 불법 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담론과 사회정책을 논의할 수 있다.
셋째, 아시아 생태설화는 문화다양성을 위한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은 2014년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2017년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 아시아태평양 그룹 위원국’으로 선출되는 등의 과정에서 문화다양성, 세계시민의식에 대한 논의가 증대되고 있다. 아시아 생태설화를 바탕으로 한국의 시민들과 외국인 주민들이 다양한 아시아 생태문화를 경험하고 세계시민의식을 기를 수 있도록 전시회나 한국-아시아생태동화축제를 기획할 수 있다.
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1장에서는 문학생태학의 관점에서 아시아 설화 연구 동향을 살펴본다. 문학생태학의 연구 관점은 글쓰기 및 문학 연구를 통해 재난과 자연친화적 삶에 대해 성찰하며 인간과 동물·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삶, 정주민과 이주민 간의 공생하는 삶이 가능한지를 탐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설화 연구는 설화에 나타난 재난과 생태적 삶,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생태적 사유, 동물보은담 등을 주제로 진행되고 있다. 설화 연구는 생태문학 관점에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전근대 문학 작품을 발굴하고, 연구와 번역·출판을 통해 아시아인이 텍스트를 공유하며 상호소통 및 평화, 자연파괴 및 재해 예방에 기여할 현실적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2장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화해 추구’라는 생태미학 관점에 대해 논하고, 아시아 생태설화의 제재와 연구 방향 및 과제에 대해 전망한다. 아시아 학계의 문학생태학 연구자들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사회정치 및 생태적·과학적 현실을 더욱 민감하게 인식하고, 전통적 설화 및 경험담, 현대구전설화 텍스트의 해석을 현재적 사건 및 미래에 대한 전망과 연결 짓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현재의 지구환경 및 생태 문제의 인식과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3장에서는 17세기 재난문학 『어우야담』에 기술된 설화를 바탕으로 16~17세기 조선의 재난 상황과 인식 태도를 살피고, 재난 상황에서 발휘된 인간존중정신에 대해 고찰한다. 『어우야담』에는 전란, 표류, 역병, 수해, 가뭄, 하늘과 땅의 이상 징후를 제재로 한 재난담 2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유몽인은 1592년 임진왜란부터 1619년 심하전투에 이르기까지 전란으로 인해 죽은 사민(士民)을 애도하고, 포로생활 및 망명인·표류민의 유랑과 가족이산의 고통을 서사화했다. 『어우야담』 재난설화에 그려진 전란과 기근, 전염병의 극심한 재난 상황에서 인간존중정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4장에서는 인도네시아 설화집에 수록된 20여 편의 작품을 통해 재난의 의미, 인도네시아 민중이 생각하는 생태적 삶에 대해 살펴본다. 인도네시아 설화에서 생태적 제재의 작품은 크게 홍수·가뭄 관련 이야기, 열대 우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좀더 힘들어하는 피부병 및 질병 관련 이야기, 자연친화적 삶을 형상화하거나 전쟁을 피하고 평화로운 삶을 희구하는 이야기들이 풍부한 편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재난과 생태적 삶에 대해 소통하며, 21세기 기후위기 대응방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5장에서는 한국과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4개국 여섯 개의 설화집에서 발견한 11편의 생태설화를 분석하며 재난의 양상과 생태의식에 대해 살펴본다. 설화 작품들에는 인간의 선행과 동물의 보은이 교환관계를 이룬다는 인식부터 살생의 반성 및 생명존중정신, 인과응보 의식까지 비교적 다양한 생태의식이 발견된다. 작품들을 읽으며 설화에 나타난 생명존중 또는 파국의 서사를 재인식하며 오늘날 생태위기의 현실에서 동물과 자연, 지구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활용방안을 찾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6장에서는 인도네시아의 〈황금수박〉, 한국의 〈놀부와 흥부〉, 일본의 〈허리 부러진 참새〉 등 아시아 6개국의 설화에서 선악형제담을 발굴하여 소개하고, 서사를 비교분석한다. 선악형제담에서는 착한 동생이 다친 새를 치료해주었다가 새의 보은으로 얻은 열매에서 금과 은 등의 보화가 생겨 부자가 되며, 욕심 많은 형은 동생을 따라 했다가 실패한다는 서사를 통해 권선징악 및 인과응보의 교훈이 표현된다. 설화 각 편에서 파악되는 문화요소와 문화상징은 선악관념과 함께, 아시아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문화 코드로 활용될 것이다.
7장에서는 한·중·일 동물보은담을 비교분석하고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을 전개한다. 동물보은담은 본질적으로 인간-동물이 선의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인간과 야생동물의 우호적 관계 및 공생·공존 관계가 가능한지를 탐색하는 이야기다. 아시아 동물보은담의 성찰을 통해 이 지구공동체에서 인간과 야생동물이 공존하고 자연환경을 보존하며 공생하는 원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8장에서는 동남아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 이주 경험담을 분석하고, 이들의 한국 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변화와 문화적응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결혼이주여성들의 삶에 대한 생태적 인식과 지원의 방향에 대해 환대와 상호문화주의의 시각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이주 경험담을 통해 우리는 이주민들의 이주 과정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 이주민과 정주민의 갈등과 상호이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종장에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기후위기 해결’이라는 과제에 대해, ‘공생의 인문학’ 개념으로 생태주의에 기반해 인문학의 범주와 핵심개념을 재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분과학문별 융합적 실천·활용방향을 탐구하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아시아의 옛이야기를 통해 자연과 생태적 삶, 공생의 정신, 화해와 소통, 평화의 정신에 대해 상상하며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의 연대 방안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