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문학적 스승
최승희의 영감의 원천
‘천재’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한 줌의 모래』
이 책의 시작은 ‘시인들의 시인’ 백석의 삶을 접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백석의 문학적 원천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을까?’
백석에 관한 평전들이 백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로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김소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리고 이시카와 다쿠보쿠입니다. 그런데 김소월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전집까지 완성될 정도로 정리가 진전된 작가들이지만, 유독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알려진 바가 적습니다. 정작 백석은 그의 필명에서 ‘석石’ 자를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이름 첫 자에서 가져왔다고 알려질 정도로 그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말입니다. 더구나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지난 백여 년간 일본의 문화사 전반에 남긴 업적을 고려해볼 때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책이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5·7·5·7·7조에 담긴 슬픔과 치유의 힘
혁신적 시세계를 연 551수의 단카
시인이자 소설가, 가인이면서 사상가인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일본 나이로 26세, 우리나라 나이로 27세에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폐결핵으로, 그가 평생 시달렸던 가난의 결과라고 얘기됩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고 불리우며 소설가로서의 화려한 입신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중퇴 이후 세상의 벽에 막혀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솟듯이 솟았던 문장들은 일본 전통의 시가문학 양식인 단카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요절하기 전 직접 편집을 맡아 내놓은 유일한 단카집인 『한 줌의 모래』는 사후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며 시가문학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단카는 천삼백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장르로 5구 5·7·5·7·7조로 구성됩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단카는 5·7·5·7·7조라는 단카의 틀을 충실하게 유지하면서도 3줄로 구성하여 단카의 형식을 혁신했습니다. 또한 기존의 단카들이 정형화된 틀에 맞추느라 기존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던 데 반해,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생활인으로서의 감정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단카를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혁신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던 당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광범위한 지지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우리나라에도 전파됐습니다. 그의 단카를 통해 백석뿐만이 아니라 무용가 최승희도 그 예술적 영감을 고백하고 있으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박태원 또한 다쿠보쿠의 영향력을 기록하며 그를 통해 시대정신을 발견합니다.
‘테러리스트의 마음을 이해하노라’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한 국민 시인, 안중근을 노래하다
다쿠보쿠는 원래 의도했던 소설가로서는 성공하지 못하면서 자신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삶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 변화 속에서 그는 자신을 불멸이 되게 한 단카들을 만듦과 함께 사상가로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런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삶에서 대역사건의 영향을 뺄 수 없습니다. 대역사건이란 일본의 사회주의-무정부주의자들이 러일전쟁 이후 피폐해지는 일본의 현실과 군국주의로부터 민중을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천황을 폭탄으로 암살하는 계획을 세운 사건입니다. 그러나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었고 당사자들은 체포됩니다.
한창 우경화로 달려가고 있던 일본 정부는 한층 문제의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무정부주의 계열 인사를 추가로 마구잡이로 구속하여 26명에 이르는 사람을 체포하고 그 중 12명을 처형합니다.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 여론을 폭력적으로 잠재운 이 사건은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다쿠보쿠 또한 대역사건의 가혹한 처벌과 날조 과정을 보며 충격에 빠지고 시대의 저변을 관찰하는 눈을 뜹니다. 『한 줌의 모래』는 그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책에 실린 단카들은 자연스러운 생활감을 드러내고 있기에 언뜻 보면 읽기 쉽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절묘한 호흡으로 단카의 전통 구조인 5·7·5·7·7조를 유지하는 작가로서의 테크니컬한 면모와 함께 다쿠보쿠가 발견한 잔혹한 시대의 풍경과 스스로의 내면 풍경을 치열하게 중첩시킨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에서 고독과 자조적 아이러니, 방탕과 질서,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사회 혁명,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삶의 슬픔이 뒤섞이는 독특한 광경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실현시키는 작가적 역량이야말로 모더니스트로서의 다쿠보쿠가 체득하게 된 능력이자 그가 ‘천재’라고 불리게 된 문학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551수 전체를 원문과 함께
초판본 편집 그대로 살려 수록
『한 줌의 모래』의 번역은 1976년에 오영진 동국대학교 교수에 의해 진행되어 『석천탁목가집石川啄木歌集』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번역은 제작 시간에 따른 문제였는지 옮긴이 자신이 아쉽다고 토로할 만치로 직역에 가까웠습니다. 또한 원전의 단카 한 수가 다른 단카로 대체되어 있는데, 삭제된 문제의 단카는 다쿠보쿠가 공산주의 이념을 가진 친구에 대해 얘기하는 단카였습니다. 이는 박정희 시대의 엄혹했던 검열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역사적 증거입니다. 오영진 교수는 이후 1989년에 책을 재간하면서 삭제된 단카를 복원하여 국내 최초로 완전 번역본을 내놨습니다.
필요한책의 『한 줌의 모래』 번역은 일본 중세문학 전문가이자 근대 일본 시가문학에 관한 탁월한 저작들을 만드신 엄인경 고려대학교 HK교수님께 의뢰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초샤판(1952)과 슈에이샤판(1972), 이와나미문고판(1993)의 『한 줌의 모래』를 번역 저본으로 삼아 비교 대조하며 진행했습니다.
제작에 있어서 주안을 둔 것은 원전의 호흡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다쿠보쿠는 생전에 『아사히 신문』의 교정 교열 담당이기도 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모리 나가이 등의 대작가들과 교류하며 전집 등 당대 작가들의 작품을 교정 교열한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직접 편집을 맡은 『한 줌의 모래』였기에, 그가 편집자로서 의도했던 호흡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판본들의 구성이 아닌 초판본의 펼침면 4수 형식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습니다. 또한 전체 원문을 수록함으로써 다쿠보쿠가 본래 의도했던 시적 호흡과 의식의 흐름을 완전하게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