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를 낳고 시가 나를 낳아, 삶도 시도 점점 나아갔으면 한다.”
볕이 들지 않는 구석을 향한 시인의 시선,
글자들을 어루만지는 마음…… 제법 애틋하고 아름답습니다.
시인은 관찰하고 통찰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의 눈길에선 곤충 ‘광대노린재’도 시가 됩니다. 다음은 「광대노린재의 울음」의 한 부분입니다. “겉모습을 추종하는 무리들,/ 기어가는 보석이란 별호가 영광이 아니라 형벌,/ 광대노린재가 노린 내를 뭉쳐/ 몸의 몽타주를 만들 때/ 아이들이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놀이를 할 때/ 햇빛도 광에 들기 전 무릎을 굽히듯이/ 울음을 꺾어 냄새로 눕힌다// 다들 키우지 못할 아이들을 왜 자꾸 만드는 걸까”.
바닥에 쌓인 모래나 암석을 파내는 준설(浚渫) 현장도 시인은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모래 쌓이는 강가에 잡풀이 자란다/ 움푹 꺼진 물웅덩이는 할머니 잇몸처럼 허물어진다/ 당신을 만난 내 마음에도/ 쌓이다가/ 혹, 패인 자리 있었을까”(시 「준설(浚渫)」 1연) 하며 한 편의 시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시인은 누구보다 글자들을 예민하게 매만지는 사람들입니다. 예순이 넘어 첫 시집을 출간했던 시인 김정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인의 언어유희는 「달빛 탐색기」에서는 “달빛이 참빗처럼 어둠을 빗어 내린다” 하고, 「공허(空虛)」에서는 “허공이 공허하다/ 허공을 뒤집은 자리에서 자라는 투명 벌레/ 보이지 않으면서 나를 갉아먹는 동안/허허로운 눈빛으로 나를 염탐하며/ 안팎으로 살찐 허공이 캄캄하게 깊어진다” 표현합니다. ‘망개 열매’는 그의 시 속에서 “얼어 죽을, 망할 놈의, 개”가 아니라 “망망대해 헤엄쳐 온/ 부서지지 않을 사랑”이 되기도 합니다(「눈밭에 피는 망개 열매」 참조).
때로는 새로운 단어를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모래시계 안에서 흘러내리는 한 알의 여자는 「모래여인」이 되고, ‘시간을 익히다’는 뜻으로 시 「시숙(時熟)」이 탄생했습니다. 냉이꽃, 찔레꽃, 자주달개비, 잿간, 흙냄새, 애기똥풀꽃…… 자연물에 더불어 표면장력, 에테르, 신라시대 출토된 고양이의 뼈 등 새로운 소재까지 아우르면서, 시인의 상상은 고여 있지 않고 넓게 펼쳐집니다. “꽃나무의 무릎”, “유령처럼 웃는 바람”, “비명도 못 지르는 나무”, “젖은 흰 눈 냄새”, “담쟁이덩굴이 낡은 벽을 기어오른다/무형의 계단을 한 칸 한 칸 붙들며”, “잘 익은 고등어 같은 저녁”…… 자신만의 표현으로 시인의 시가 무르익어 갑니다.
시를 읽기 좋은 때는 언제일까요? 언제나 바로 지금입니다.
- 이 책에는 제작자가 숨겨 놓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제목처럼 ‘구석을 보는 사람’이 되어 본문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찾아보셔도 좋겠습니다.
- 이 책의 편집자는 시인 김정숙의 딸입니다. 오랜 문학 편집자인 딸이 첫 시집에 이어 두 번째 시집도 편집했습니다.
- 이 책은 1인 출판사 ‘아무책방’에서 처음으로 출간하는 시집입니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소출판사 성장부문 제작 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