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끊임없이 연기를 거듭해야 하는 무대라면
우리는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
마침내 위선이 사라진 세상의 끝을 향해
두 소년이 질주한다
『경로이탈』의 주인공 정국은 소위 말하는 비행청소년이다. 정국을 반항하게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위선이다. 유명 배우인 정국의 아빠는 정국을 어릴 때부터 아역 배우로 데뷔시키고, 빡빡한 틀 안에서 키우려고 한다. 엄마는 그런 아빠와 정국을 열심히 뒷바라지하며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한다. 하지만 정국에게는 이 모든 모습이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타인을 시선 안에 가두려는 위선으로 보인다. 부모를, 부모처럼 번지르르하게 행동하는 다른 어른들을, 사춘기를 지나며 스스로 솔직하지 못하게 행동하는 친구들을 혐오한다.
그런 정국이 혐오를 해결하는 방식은 ‘폭력’이다. “문신 사건”은 그 과격함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정국은 반에서 문신하고 싶다며 끊임없이 허풍을 떠는 한 친구를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젓가락 사이에 바늘을 끼고 실로 칭칭 감은 다음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잉크를 사다가 밑그림도 없이 ‘짜져새꺄’라고 새겨버린다. 이 같은 위악과 과격성으로 몇 번이나 전학을 다녀야 했다. 물론 매번 퇴학을 면할 수 있는 건 유명 연예인인 아빠의 재력 덕분이다.
그런데 가을은 정국이 혐오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아직 아이와 같은 편견 없는 미소를 얼굴에 띠고 가식 없이 정국을 대한다. 또 정국과도 다르다. 무엇이든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정국과 달리 가을은 학교에서 게이라는 의심을 사고 폭력적으로 따돌림당하면서도, 당당하게 맞서며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정국은 소설을 읽고 습작하기도 하는 가을과 어울리며 필사를 하며 비행을 잠시 멈추는 듯 보인다.
소년들에게는 그저
자기 얼굴을 제대로 바라봐줄
단 한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평화는 어느 날 가을이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고백했다가, 그 애가 고백을 받아주지 않자 자기 얼굴을 난도질해 자해하면서 어그러지게 된다. ‘얼굴’은 『경로이탈』에서 중요하다. 가을은 폭력과 더불어 염색, 피어싱, 화장 등 얼굴을 꾸미는 행위를 통해 통념에 저항하기도, 자신을 규정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유일한 친구인 가을의 얼굴을 덮은 하늘색 모포에 피가 배어 있는 모습을 보고 정국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굴에 대한 가을의 태도 또한 정국과 조금 다르다. 가을은 기본적으로 향수나 비누를 쓰지 않아도 살에서 세탁한 와이셔츠에서 나는 산뜻한 향을 풍긴다. 얼굴을 치장하고, 패션이라는 가면을 씌워 자기를 호소하지 않아도, 가을은 가을만의 고유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가을의 자해 사건 이후 정국과 가을을 떼어 놓으려는 학폭위, 아빠와 어른들의 방해를 뚫고 두 사람이 재회했을 때, 화려하게 염색되어 있던 정국의 머리가 여러 사건들로 인해 민 머리가 되어 있었지만, 가을은 완전 멋지다고 얘기해 준다. 가을은 자신의 얼굴에 난 상처를 정국에게 보여주며 “내 얼굴이 나을 때까지만 날 지켜줘.”라고 말했지만, 사실 정국의 민 머리, 즉 정국의 진짜 얼굴을 옆에서 바라봐주고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야 말로 가을인 것이다.
비로소 시작으로 끝맺게 되는
서경희식 청소년소설
서경희는 청소년소설이라고 해서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날것의 부조리들과 타협하지 않는다. 여전히 가장 고개 돌리고 싶은 상황과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 앞에 서서 그 음의 에너지들을 기록한다. 『경로이탈』의 두 아이들이 마지막에 차를 타고 땅끝마을을 향해 질주하는 여정이 마냥 유쾌할 것 같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이 결말이 만약 로드무비의 시작이라면, 정국과 가을은 땅끝마을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도착할 때즈음엔 분명 성장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다. 차의 백미러 끝에서 햇빛이 반짝한다. 그렇게 서경희 소설에서 지금껏 보기 드물었던 희망의 단초가 꿈틀댄다.